<디 이터널 도터>
- 모녀관계의 깊이를 찾아서
조안나 호그 감독의 작품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 혹은 직접적으로 체험한 이야기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진실하다. 영국의 중상류층에 속한 그의 이야기를 '소셜 리얼리즘'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모-자식의 관계는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도 다른 무엇과 비교하기 힘든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이는 종의 번식이라는 유전자적 특성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고도로 진화된, 그래서 가장 긴 기간 동안 부모-자식의 유대관계를 필요로 하는 인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부모-자식의 관계가 모두 동일하지가 않다. 부-자, 부-녀, 모-자, 모-녀의 관계는 확연히 구분되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오랜 역사를 가진 사회-문화적인 환경에 의해 굳어져온 것이다. 이러한 차별성은 과거에는 신화적 소재가 되었으며 현대에는 심리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모-녀의 관계는 가장 특별한 관계를 형성한다. 모녀 관계의 특징은 강한 정서적 유대감에서 시작된다. 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종종 깊은 정서적 연결이 형성되며, 이는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데서 비롯된다. 오랜 가부장 사회에 따른 약자 '동맹'의 특성이 바탕에 깔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측면은 육체적 관계 즉 스킨십이 가장 긴밀하다는 점이다. 다른 부모-자식 관계에 비해 모녀의 스킨십은 가장 오래 지속된다. 딸이 출산을 했을 때 친엄마가 돌보게 되는 것도 그런 예의 하나이다.
나는 치매가 있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누나와 여동생과 함께 종종 방문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아들인 나와 어머니의 관계가 누나나 여동생이 가지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무엇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왔는데, 이 영화 <디 이터널 도터>를 보면서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다.
틸다 스윈튼이 1인 2역으로 어머니와 딸의 역을 모두 맡은 이 영화는 모녀 사이에 형성된 심리적 관계의 특별함을 탁월한 연출력으로 보여주고 있다.
<수베니어>
- 아픈 추억을 삶의 긍정적 자양분으로 전화시키는 방법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스웨덴의 루벤 외스틀룬드(Ruben Östlund) 감독이 그랬고, 그리스의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 감독이 그랬고, 영국의 조안나 호그(Joanna Hogg) 감독 또한 그렇다. 첫 장편 작품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으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되는 케이스이다.
조안나 호그 감독은 비교적 늦은 40대 후반의 나이인 2007년에 첫 장편 영화 <언릴레이티드(Unrelated)>를 만들었지만 그때부터 바로 영화계의 신성으로 각광받았고, 두 번째 장편 영화 <섬들(Archipelago)>를 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그 후 호그 감독의 영화 제작자로 나서 그 후 2019년, 2021년의 <수베니어(The Souvenir)> 2편과 2022년의 <디 이터널 도터(The Eternal Daughter)>를 만들었다.
<수베니어>는 파트 1과 파트 2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대부>를 보고 <대부 2>는 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연결은 되지만 구별되는 시리즈가 아니라, 두 편을 모두 보아야 하는 긴밀하게 스토리가 연결된 작품이다.
우선 지적할 것은 한국어 제목 <수베니어>가 아쉽다는 점이다.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무엇보다 '기념품'을 떠올리게 되기에 왜 제목이 '기념품'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프랑스어에서 Souvenir는 추억 또는 회상의 의미가 더 강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제목이 '추억'이었다면 더 이상 제목에 대한 의구심은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중간에 아주 잠깐 옛 노래가 흘러나오며 "수베니어"라는 가사가 등장하는 것 같아서 찾아보았는데 확인하지 못했다. 그 대신 이 제목은 주인공 줄리의 연인인 앤서니가 줄리에게 접근할 때 선물한 그림 사진이자, 직접 미술관에 함께 가서 확인한 그림으로 영화 전편에 걸쳐 종종 등장하는 프랑스 로코코 시대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의 동명 그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앤서니는 이 그림이 연인의 편지를 받은 여인이 감격에 겨워 연인의 이름을 나무에 새겨 넣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영화의 내용과 상응하게 해석하자면 죽음으로 떠나 버린 연인을 "그리워하며" 이름을 새기는 장면이라고 할 수가 있다.
위에서 "그리워하며"에 따옴표를 친 이유는 이 영화가 단순히 사별한 연인에 대한 일반적인 그리움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라고나르의 이 그림을 통해 호그 감독은 '사랑의 순간성과 상실의 아픔'을 시각적으로 대비시킨다. '추억'은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1편에서부터 앤서니는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게 표출되지만 줄리는 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심리적으로 어떤 기재가 작동하는 것인지 그에게 종속된다. 앤서니의 접근은 매우 교활하고 집에서 나폴레옹의 긴 외투를 입은 그는 지배적으로 표현된다. 관객은 줄리가 그에게 끌려가고 예속되는 것에 마음이 아프지만 줄리는 지속적으로 엄마에게 돈을 빌려서 앤서니의 헤로인 구입 비용으로 대준다. 줄리는 앤서니가 헤로인 중독자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직면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부르며 해석하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삶에 빈번히 나타나는 현상인 것은 분명하다.
앤서니는 결국 자신의 뒤틀린 이중적인 삶이 가져다주는 고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과 유사한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한다. <수베니어> 2편에서는 줄리가 이미 알거나 짐작했음에도 애써 부정하려 한 사랑했던 애인의 정체를 투명하게 수용하면서 그에 따른 고통을 어떻게 이겨나가는가를 보여준다.
그 과정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객관화, 대자(對自)화이다. 1980년대 중후반 25살 정도의 줄리는 영화 학교의 졸업 작품으로 자신의 연애 경험을 영화로 만든다. 이것은 1차적 대자화이다. 그리고 '나'인 조안나 호그는 30여 년 후에 이것을 다시 영화로 만들어 2차적 대자화를 한다. 그러니까 줄리가 있고, 그 줄리를 대자화하는 20대의 줄리가 있고, 그리고 다시 20대의 줄리를 대자화하는 60세의 조안나 호그가 있다. 그러니 영화는 복잡성을 띨 수밖에 없다.
21세기 포스트모던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영화의 플롯은 매우 복잡하고 중층적이다.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회적 현실을 담은 흑백 스틸 사진이 툭툭 등장하기도 한다. 파트 2 후반부에 등장하는 '베를린 장벽 붕괴 뉴스'는 시대적 전환점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기억이 집단적 역사와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줄리의 엄마는 틸다 스윈튼이, 줄리는 실제로 틸다 스윈튼의 딸인 아너 스윈튼-번이 연기한다. 이 모녀 관계의 특별함은 매우 사려 깊고 온화하지만 어딘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줄리와 아버지 관계와 대조를 이룬다. 실제의 모녀를 영화 속에 모녀로 등장시킨 호그 감독의 의도 즉 모녀 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주제의식은 2022년에 만들어진 <디 이터널 도터>(The Eternal Daughter)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한편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몇 장면들은 오마주(hommage)로 생각이 된다. 영화 촬영 공간의 다양한 앵글과 복잡 미묘한 구도는 찰리 카우프만(Charlie Kaufman) 감독의 2008년 영화 <시네도키, 뉴욕>(Synecdoche, New York)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줄리와 앤서니의 베니스 여행 장면은 로맨틱하면서도 악의적인 분위기를 띠면서, 인위적인 구도와 색상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살인마 잭의 집>(2018) 후반부에 나오는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서 영감을 받은 강렬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규성(길목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