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린 조합원은 아직 학생이다. 길목의 청년사업팀에서 책읽기 모임과 생태문화학교의 간사 일을 맡고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아 자신의 전공인 국제관계학과 연관하여 미래의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꿈이 있다. 청년의 시각과 마인드로 '소풍가는 학교'를 기획하고 있는 등, 푸른 청년활동가이다.
Q 아직 학생이죠, 어떤 공부를 하고 있나요?
현재 대학교 4학년이고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보통 정치외교학과로 많이 알려져 있어요. 전공필수 수업인 정치학, 국제관계 등을 공통으로 듣고 나머지 학점은 전공선택으로 채우게 됩니다. 유럽·일본·미국 등 지역 정치를 배우기도 하고 외교사 등 국제 정치의 역사를 배우기도 합니다. 국제금융 등 무역과 관련한 수업이나 GIS를 활용한 수업도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학문을 공부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이과였거든요. 특히 생명과 수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3학년 진학을 하면서 문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수학이 저를 좋아하지 않아서 ~하하 ... 점수가 그렇게 좋지 않더라고요. 그나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선택과목을 바꾸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때와는 매우 다른 성격의 전공을 공부하게 되었네요
Q 사회에 나가서도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제가 4학년이 되면 그게 정리가 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전공에 큰 흥미는 없어서 시험을 준비해서 전문성을 키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전공을 살리는 길도 생각하게 되었는데 생태문화학교의 영향이 컸어요. 원래 환경에 관심이 많아 작년 초 '환경정치론'이라는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는데 그때 때마침 생태문화학교 팀에도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수업을 통해 환경 관련 국제기구들의 작동이나 환경을 둘러싼 국제 사회의 움직임에 대해서 배우고, 생태문화학교를 통해서는 직접적인 실천 사례들을 보며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환경과 관련한 국제기구를 들어가는 등 '환경'에 대한 관심사를 직업과 접목시킬 수 있겠다고 깨닫게 되었어요. 아직은 이런저런 고민을 안고 있어서 생각을 정립해 나가는 시기라 하겠습니다.
Q 현재 향린과 길목이 주관하는 생태문화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태문화학교가 3기째 진행되고 있고 간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생태문화학교 팀에서 청년 간사를 원한다고 하셔서 1기 시작하기 몇 주 전에 제가 투입이 됐어요. 제가 처음 안내받기로는 '회계' 일을 주로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전공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고 회계 업무에 관심이 있을 때라 그 부분에 흥미를 느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오히려 서포트를 하는 일들이 더 많더라고요. 예를 들어 강의가 끝나고 난 후 짧게 워크숍을 하는데 그때 진행자를 맡고 있습니다. 수강생들과 강사님이 편하게 질의, 응답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수강생들이 각자 자기 삶에서 있었던 생태 문화적인 체험들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랑 더 적극적으로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1기부터 쭉 생태문화학교 간사로 참여하고 있어서 3기 현재까지 계속 반복하여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강사진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그때는 캐치하지 못했던 것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해서 반복해 수강해도 좋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수강생들이 새로운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왜 그때 그 질문을 못 했지? 라는 생각도 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매 강의가 기대되고 재밌습니다. 생태문화학교 시작하기 전 학기에 환경 관련한 공학 계열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수업에서는 주로 환경오염을 다뤘는데, 환경오염이 산업과 실질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고 오염이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가를 추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배운 수량·수치 관점에서의 환경 문제에 생태문화학교만의 환경 논의, 실천 방안들을 대입해 보며 즐겁게 간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Q 환경은 정치에서 어떻게 이슈화되고 있나요?
환경 문제는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 차원에서 함께 노력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환경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남용하다 보면 전 세계가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맞게 돼요. 그렇기에 다른 문제들과 달리 환경 문제는 개인 차원이나 국가 차원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고 국제 정치를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환경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지요. 국제 사회에서는 파리협정이나 생물다양성협약 등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파리협정은 지구 온도가 1.5도, 더 나아가 2도까지 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 국가들이 각자 5년마다 자신들만의 계획을 짜고 검토하기로 한 약속이지만 잘 되지 않아서 작년에 이미 1.5도 선을 넘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Q 우리나라에서 환경정책은 어느 정도로 지켜지고 있는지요?
아무래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환경에 대한 태도도 바뀌고 환경 정책도 변화하게 돼요. 지금의 한국은 제대로 된 환경 정책을 논의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했다가 다시 규제를 완화한 흐름을 보면 환경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죠.
국제적 환경 질서를 잘 따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파리협정에 따르면 국가 별 환경오염 관련 실천 다짐과 보고를 5년에 한 번 시행하는데 보통 환경 정책 제안을 하는 시점과 진행 보고를 하는 시점 사이에 정권이 교체되기 때문에 공수표만 날리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어차피 보고서를 내는 건 다음 임기의 대통령이니 밖에 나가서는 환경을 위해 이만큼 노력하겠다고 해놓고 실제로 시행은 되지 않는 겁니다. 기업은 이윤 창출을 하려면 환경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가 제한선을 제시해서 규제를 해야 됩니다. 근데 사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잘 되는 게 국가 입장에서 좋잖아요. 그러다 보니 규제가 느슨해지게 됩니다.
이런 흐름은 국제 사회에서 바라볼 때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별로 좋지 않다고 볼 수 있죠. 앞서 말했듯 국가들이 전부 그렇게 적극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키게 되면 결국에는 다 같이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환경에 대해서 우리나라가 조금 더 힘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환경정책을 좀 더 검토하고 국제사회에서 모범을 보이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Q 탐방이나 워크숍 프로그램도 있더라고요?
생태문화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환경도 있지만 돌봄과 공동체적 삶도 포함되고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그래서 생태문화학교는 한 회기에 2번씩 공동체 탐방을 갑니다. 각양각색의 마을을 보며 공동체적 삶은 어떨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하게 돼요. 개인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수록 에너지와 환경 낭비도 심하고 돌봄이 필요할 때 비용과 인력이 더 드는데 반해 한데 모여 살면 그런 비용은 절감하고 끈끈한 유대를 경험하며 살 수 있더라고요.
특히 홍천을 내려갔을 때의 기억이 좋았어요. 전통적 마을에서 살아본 적은 없어서 실제로는 얼마나 유사할지 잘 모르겠지만 옛날 마을이 딱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함께 뒤엉켜 놀고, 어른들도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어요. 식사하실 때도 각 가정에서 따로 만들어 드시는 게 아니라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식사를 준비하고 계란과 황토로 함께 지은 넓은 공간에서 함께 모여 공동식사를 하시는데 참 멋있었습니다. 외부 화장실을 활용해서 퇴비를 직접 만드신다고 하셔서 신경 쓸 것도 많고 까다로울 수 있는데 이걸 하다니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 살면 이런 마을에서의 삶은 살 수 없는 걸까 생각했는데 도시 속에서도 충분히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곳들이 많더라고요. 이번 생태문화학교 3기의 첫 탐방으로 숨,쉼 센터를 방문했는데 같은 건물 아래서 다양한 세대가 서로의 것을 공유하고 기대며 살아가는 것을 보며 나는 또 어떤 사람들과 어떤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게 될까 하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Q 길목의 청년 사업팀 간사도 맡고 있네요. 어떤 사업을 하고 있습니까?
올해 1월부터 청년 사업팀의 간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상균 목사님과 강은성 이사님, 강민정 위원님과 저까지 해서 4명입니다. 현재는 청년 책읽기 사업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길목의 유구한 청년 지원 프로젝트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청년 모임들에 지원을 하는 사업입니다.
청년 사업팀을 시작하며 새로운 활동들도 시도해보고 있어요. 대다수의 청년들은 SNS를 활발히 사용해요. 그중에서도 청년들에게 가장 친근한 SNS인 인스타그램을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고 실제로 현재 길목의 청년 사업을 홍보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청년 책읽기 사업처럼 이미 있는 모임을 지원하는 것에서 벗어나, 청년들이 새롭게 모이고 직접 움직이며 함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더 동적인 사업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 중 하나가 '문화생활'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친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심사를 공유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나눌 기회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이런 기회가 많이 줄어들더라고요. 문화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함께할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고, 같은 시간에 같은 감정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수업은 힘들고 지루할 때도 많았지만 소풍만큼은 늘 설레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평소엔 배우기 어려운 것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소풍의 특별함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소풍만 가는 학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에서 '소풍 가는 학교'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풍이 단순한 놀이를 넘어,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더 깊이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행, 음악회, 미술관, 박물관, 영화관 등 다양한 곳을 함께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또 길목에는 여러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아, 그분들이 가이드 역할을 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번 소풍이 세대 간의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거든요. 중고등학교 때 김창희 장로님이 진행하신 '서촌기행'에 참여했었습니다. 서촌기행을 통해 서촌의 골목과 공간들에 대해 배운 뒤로 그전까지는 그냥 지나쳤던 장소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이런 재밌는 경험을 더 많은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시작할 '소풍 가는 학교'가 청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다양한 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단순한 놀이를 넘어 더 깊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청년들의 관심사는 주로 어떤 것들인가요?
그게 참 안타깝고 속상한 부분인데요, 요즘 청년들은 열정을 가지고 깊이 파고드는 분야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관심이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쏠려 있고, 그 경쟁에서 성공하거나 탈락하는 것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레이스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정말 큰 것 같아요. 취업이나 학업을 위한 일이 아니면 모두 쓸데없는 일로 취급하는 분위기예요. 물질직인 목표 의식 없이 어떤 가치를 위해 일한다는 게 시간 낭비 아니냐는 시선도 많이 받습니다. 저도 처음에 생태문화학교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질문이 "그걸 왜 해?"였어요. 그런 반응에 저도 살짝 주춤하게 되더라고요.
또, 누구나 책이나 영화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이런 콘텐츠조차 유튜브 30분 요약이나 20초 쇼츠처럼 빠르고 간편하게 소비하는 데 익숙해진 것 같아요. 이렇게 가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미루고, 요약된 콘텐츠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려고만 한다면 마음 한 편의 공허함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때일수록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청년들은 이 공허함과 답답함을 자신의 능력이나 경제력 부족에서 오는 위기감으로 받아들이며 점점 더 세속적인 가치를 좇거나, 더욱 쉽고 간편한 콘텐츠 소비와 도파민 충족에 몰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청년들의 직업 선택 과정에서도 자신의 관심사나 가치에 대한 고민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저는 직업을 선택할 때 가치로운 일, 돈을 잘 버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이렇게 세 가지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어떤 가치를 위해 일하겠다'는 청년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직업은 직업일 뿐이고, 내 삶은 내 삶이니까, 빨리 안정적인 직업을 정해서 여유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 같아요.
Q 지난 탄핵 집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나요?
탄핵 집회에는 네다섯 번 정도 참가했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 두세 번은 교회 단위로 참여했어요. 계엄 발표 소식을 듣고 집에만 있어서는 도저히 불안함이 해소되지 않아서 집회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성세대는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을 직접 겪으면서 그 과정에서 친구나 가족이 겪는 고통을 몸소 느꼈기 때문에 국가 폭력에 대한 공포가 더 크게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저희 청년 세대가 공유하는 공포는 조금 다릅니다. 저에게는 좌절에 더 가까운 감정이에요.
저는 초등학교 때 세월호 참사를 겪었고, 대학생이었을 때는 이태원 참사가 있었습니다. 제 친구나 지인도 그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런 사건들이 더 생생하게 공포로 다가왔어요. 기억이 지워지고, 사회 안전망이 부실하다는 불안, 그리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크게 느낍니다. 최근에도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살인이나 칼부림 사건 등이 발생하고 있고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와 같은 경험들이 겹쳐지니까 내 가치나 목숨이 이 사회에서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Q 집회에서 극우 청년들을 만난 적도 있었을 텐데요.
집회에서 극우 성향의 청년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들은 저에게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때로는 스스로 깊이 고민하지 않고 집단 분위기에 휩쓸려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자기 신념대로 살아가지만, 저는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계속 고민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자기 성찰이 부족하다 보면 누군가가 주입한 믿음이나 진영 논리에 쉽게 빠질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극우 청년들 중에는 종교 단체나 특정 집단에서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어떤 의미로 행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보면 결국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남의 믿음을 따르게 되고, 때로는 꼭두각시처럼 남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 같아요.
탄핵이 이루어진 뒤에는 큰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꼈고, 이 일을 계기로 향린교회와도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교회에서는 새날 청년회 소속이죠?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새날청년회(새청)에 소속되게 됩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20대, 30대 초반 또래들이 함께 모이는데, 실제로는 나이 구분이 크게 의미 있지는 않은 분위기예요.
새청은 매년 하나의 대주제를 정하고 분기 단위로 활동 계획을 세우는데 그때마다 교육부장 등의 담당을 선출합니다. 6개월마다 회장, 부회장, 총무를 맡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평화'예요. 그래서 상반기에는 5월 평화기행으로 광주를 방문할 예정이고 매달 평화와 관련한 독서 모임을 갖는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구성원은 약 서른 명 정도인데, 실제로는 12~14명 정도가 꾸준히 출석하고 있어요. 최근 들어 새청에 새로운 멤버가 늘고 있습니다. 종교적 고민을 갖고 있다가 탄핵 집회 광장에서 향린교회가 커피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해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향린은 원래 퀴어 프렌들리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새청이 작년 대만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더욱 퀴어 프렌들리한 교회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아요. SNS를 통해 '향린이 퀴어에 열려 있대, 나도 가볼까?' 하는 내용의 글을 많이 접했고 이런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했나요?
모태신앙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사실 아버지는 무신론자셨어요. 어머니께서는 결혼 전에 "나와 결혼하려면 매주 함께 교회에 가야 한다"라고 조건을 거셨고, 아버지께서는 그 약속을 20년 넘게 지키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늘 "네가 어떤 생각으로 믿음을 갖는지 스스로 고민해 보라"라고 조언해 주셨고, 그래서인지 저 역시 신앙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며 자랐어요. 특히 어릴 때는 항상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완전한 신앙인도, 그렇다고 완전히 믿지 않는 사람도 아닌 것 같았고,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늘 생각했어요. '믿음이란 무엇일까?',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정말 신앙인이 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교회에 다니는 나쁜 사람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선한 사람보다 천국에 갈 확률이 더 높은 걸까?' 하는 질문들을 자주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신앙이란 단순히 믿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하나님께서 제 삶 전반을 사랑으로 지켜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행동하는 것이 저에게는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향린교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일꾼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Q 향린과는 어떻게 만났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고 향린교회에 처음 출석한 것은 1년 뒤인 6학년 때였습니다. 서울살이 첫 해는 어떤 교회를 다닐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교회에 나가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대신, 이번에는 어떤 교회를 다닐지 본인이 정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1년 동안 여러 교회를 다녔고, 마지막에 향린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마음속으로 이미 향린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처음 향린교회에 왔을 때는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예배 중에 징을 치고, 국악 연주가 나오고, 8분의 6박자로 구성된 찬송이 나오는 등 전에 다니던 교회와는 많이 달랐거든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열심히 다니시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도 점점 마음에 들어 하시며 함께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아버지가 제일 열심히 교회를 다니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서는 "아빠 안의 믿음을 인정하라"며 아버지를 종종 놀리기도 합니다.
Q 공부 외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진짜 사소한 거지만 저는 뭔가를 쓰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예민한 편이라 그런 감정이나 생각을 해소할 곳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 보기, 뜨개질하기, 산책하기 등 다양한 방법이 많겠지만 저는 노트 꾸미는 게 제일 재밌었어요. 이곳저곳에서 생긴 영수증들, 티켓, 여행 사진 등을 모아 스크랩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영화 기록, 음악 취향 기록 등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해서 손으로 쓸 때 가장 즐겁고 그중에서도 일기 쓰는 걸 좋아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내 마음이 저절로 정화되거나 모든 고민이 사라지지는 않잖아요?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는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늘 '믿음과 내 삶, 내 생각을 어떻게 합치해 갈까' 고민하게 되는데 저한테는 그런 과정이 곧 신앙생활인 것 같아요. 일기에는 그런 고민들을 적습니다. 사실 이렇게 말해놓고 매일 성실하게 쓰는 건 아니지만 힘들 때는 꼭 일기를 씁니다. 마음이 가장 무겁고 불안이 가득 차올랐을 때 일기를 쓰면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그분께 편지를 쓴다는 마음으로 일기를 쓰면 확실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