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르하(Farha)>는 요르단 출신 여성 감독 다린 살람(Darin Sallam)의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을 배경으로 하며, 주인공은 파르하라는 14세 여성입니다.
우리를 닮은 인간
<파르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함'이라는 자막과 함께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웃으며 장난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웃으며 장난치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모습을 보니, '아, 맞아 그렇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여러분은 '팔레스타인' 또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먼저 떠오르나요? 아마 많은 분의 마음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말과 함께 전쟁과 폭격, 죽음과 눈물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겁니다. 저도 그렇고요.
그런데 제가 만났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정말 웃기도 잘하고 농담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모여 앉아 수다도 잘 떨고, 결혼식 날이 되면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몇 시간씩 춤을 추며 노는 사람들입니다. 슬픔과 눈물도 있지만, 그들 또한 우리처럼 밝게 빛나는 웃음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립니다.
영화 <파르하>
친구들이 장난을 치는 동안 책을 읽고 있던 파르하는 도시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합니다. 아마도 1948년 무렵 팔레스타인의 시골 마을에는 학교가, 그것도 여성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파르하는 아버지에게 학교에 가서 역사, 영어, 수학 같은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주변 사람과 의논하며 딸을 도시 학교로 보낼지 말지 고민도 하고요.
나크바
파르하와 어린이들이 차를 타고 떠나는 영국군에게 욕하고 돌을 던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국군이 떠나고 곧이어 유대 군대가 파르하가 살던 마을을 공격하는 장면도 나오고요.
그 당시 역사를 살짝 살펴보면, 1차 세계대전 때까지 팔레스타인은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이긴 뒤, 팔레스타인은 영국이 지배하게 됩니다.
한편, 19세 말 반유대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유럽에서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자는 시오니즘 운동이 일어났고, 여러 후보지 가운데 팔레스타인이 최종 목적지로 선정됩니다. 시오니즘 세력은 유럽 등지에 있던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 정책을 추진했고, 수십만 명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1947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아랍인을 죽이고 내쫓으며, 유대 국가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과 관련해 떠도는 이야기 하나는 디아스포라(이산離散) 유대인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국의 지배가 끝나는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던 유대인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이 유대인의 고향이라는 것은 그들의 주장일 뿐이고, 오히려 조상 대대로 팔레스타인에서 살아온 것은 팔레스타인인입니다. 시오니즘 운동이 성장하던 19세기말과 20세기 초 팔레스타인 인구 구성을 보면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럽 등지에서 몰려온 유대인이 유대 국가를 세우겠다고 나서면서 팔레스타인 인종 청소, 곧 나크바(Nakba, 대재앙을 뜻하는 아랍어)를 일으킨 것입니다.
유대 군대가 총을 쏘고 폭탄을 터트리자 놀라 당황하는 파르하
파르하가 살던 마을에 유대 군대가 쳐들어오자, 대부분의 사람이 피난을 떠납니다.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아버지는 파르하를 창고에 숨기고 밖에서 문까지 잠급니다. 나크바 당시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1947~1949년 나크바 과정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이 데이르 야신(Deir Yassin) 학살입니다. 1948년 4월 9일, 이르군(Irgun)과 스턴갱(Stern Gang)이라는 유대 군대가 예루살렘 인근에 있던 데이르 야신이라는 마을을 공격합니다. 집마다 다니며 사람을 한데 모아 처형하기도 하고, 집에 수류탄을 던져 폭파하기도 합니다. 여성을 강간한 뒤 살해하는 등 데이르 야신에서만 100여 명이 희생됩니다.
나크바 전체를 놓고 보면, 유대 군대는 1만 5천 명가량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고 75만 명가량을 난민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530여 개 마을과 도시를 파괴하며,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합니다. 파르하와 아버지가 바로 그 일을 직접 겪은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유대인 또는 시오니스트가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에 대한 인종 청소를 벌인 결과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 만큼 이스라엘은 어떻게든 나크바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합니다. 나크바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곧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성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크바 당시 아랍인은 왜 유대 군대에 맞서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지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파르하>에도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람도 나옵니다. 물론 나크바 과정에서 일부 아랍인이 유대 군대에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워낙 전력의 차이가 커서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는 동안 영국은 유대인에게 무기와 훈련을 제공했습니다. 반면 1930년대, 영국은 자신의 지배에 저항하는 많은 아랍인을 죽이고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 결과 유대 군대가 나크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아랍인이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던 겁니다.
5월 15일은 나크바의 날
파르하는 갇혀 있던 창고의 문틈으로 유대 군인들이 갓난아기를 포함해 일가족을 몰살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파르하가 나크바의 피해자이자 목격자가 된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파르하가 텅 빈 마을을 홀로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과거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던 과정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조선인을 지배하며 농사를 짓도록 만들었고, 조선인이 생산할 쌀을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곧 일본은 조선인을 노예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 일을 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크바 당시 유대인은 아랍인을 노예로 삼으려 한 것이 아니라, 아예 모두 죽이거나 내쫓으려 했습니다. 파르하처럼 살아남은 사람은 살기 위해서라도 멀리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랍 마을을 점령한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이 살았다는 흔적 자체를 없애기 위해 집과 이슬람 사원 등을 폭파하기도 했습니다.
<파르하>의 감독 다린 살람
한국인은 3월 1일이 되면 삼일절을 기념하며 일본의 조선 지배 역사를 기억합니다. 팔레스타인인은 5월 15일을 나크바의 날이라 부르며, 크나큰 고통과 상실의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크바의 날이 되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영화 상영회나 강연회 등의 행사를 열며,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하루빨리 끝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