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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 맥선일미(麥禅一味) - 김경재 선생님을 추모하며

에피소드 2: 맥선일미(麥禅一味)

- 김경재 선생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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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것에 꽤나 진심인 편인 나는 차 역시 좋아한다. 그건 석사 시절, '엄청 재밌는데 갈래?'라는 선배의 꾐(?)에 빠져 참여했던 종교 간 대화 모임 평화고리의 대화 캠프를 통해 만난 이웃 종교인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자들에게 '자신을 지극히 알기 위해서는 이웃을 지극히 알아야 한다' 가르쳐 주셨던 김경재 선생님이 아직 강단에 계셨던 시절, 선생님의 글과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고 있었던 나는 가톨릭,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의 예식과 교리를 접하며 신앙적 지평을 넓혀갈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원불교 교무님이나 불교의 스님들은 찾아갈 때마다 늘 멋스럽게 차를 내주셨는데, 일단 그 분위기가 엄청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도 좋았거니와 차를 내리고 또 함께 마시는 과정 전체가 어떤 의식에 참여하는 것 같아 내겐 또 다른 배움의 장이기도 했다. 그건 늘 붕 떠 있는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도록 해주는 안내 같기도, 수고했다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는 위로 같기도 했다.

 

이후 어깨너머로 알아가기를 지금껏 이어오고 있는 차는 편안한 대화를 위해,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또 가끔은 전날의 숙취 해소를 위해 매우 소중한 삶의 동반자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은 어설프게나마 다구 몇 개를 갖추고 혼자 마시는 것도, 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좋아한다.

 

문득 어딘가에서 누군가 맥주 얘기는 도대체 언제 할 거냐 핀잔이 들려오는 것 같다. 또 '그래서 넌 차와 맥주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냐?'라는 질문이 들리는 듯도 하다. 자! 자! 조금만 참고 읽어주시길, 아울러 그 질문의 답은 이 글의 제일 마지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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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3국 중 일본 다도(茶道)의 연원은 흔히 센 리큐(千利休, 1522-1591)라는 인물에서 찾는다. 중국 귀족문화로 일본에 처음 소개된 차는 귀족과 상층 사무라이들에게 계급적 지위와 권력을 드러내는 도구로 인식되었다. 이에 따라 찻잔과 같은 다구는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면 인정해 주지 않았다. 큰돈 들여 입수한 것이니 가능하면 화려한 무늬여야 할 터, 거기에 자랑은 기본값! 점차 차 맛, 함께 하는 사람보다는 '이게 어느 나라 무슨 장인이 빚은 작품인데.......'로 시작하는 경쟁적 자랑이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 마시는 자리는 무로마치 막부 붕괴 이후의 전국시대 중 권력과 자본의 각축장으로 변질되었다. 심지어 내놓은 차가 무엇인지 경쟁하는 '투차(鬪茶)'를 통해 차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음을 놓고 싸움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당시 차를 마신다는 것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라면 '회원권 가지고 골프 좀 친다' 정도와 비슷하달까?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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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리큐는 이 같은 상황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다성(茶聖)이었다. 선종 계통의 승려였던 그는 화려함의 투전판 같은 지배층의 차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간소하고 소박하며 평등한 그 만의 다도를 주창했다. '간소하다'는 뜻을 가진 '와비차(わび茶)'라는 사조는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센 리큐식 다도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하겠다. 그가 당대의 사조와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상을 구축했던 원인에 대해 일본학계 중 소수는 한반도 연관성을 제기한다. 우선 센, 즉 '천'이라는 성이 일본에서 자생한 것이 아닌 반면, 오랜 과거, 천은 '천방지축마골피'로 상징되듯, 한반도에서 낮은 계급의 성씨였다. 이렇게 볼 때 소소한 것에 대한 집중은 일본과 한반도에서 모두 마이너리티였던 본인과 가문의 경험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하겠다. 아울러 그가 화려한 중국풍 다기 대신 주장했던 소박함은 청자, 백자로 이어지는 한반도 다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훗날 이는 역설적으로 임진왜란 중 조선에 침략한 상층 사무라이들의 경쟁적 도기 강탈과 도공 납치라는 끔찍한 만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와비 스타일의 다도는 차뿐 아니라 다기, 차 마시는 공간인 다실 및 차를 준비하는 이와 손님 각자의 마음가짐 등 차 전체를 포괄한다. 그의 다실은 먼저 매우 소용하고 간소한 정원을 거친다. 로지(露地, ろじ)라고 하는 그 공간을 지나며 손님은 마치 산문(山門)을 지나 사찰 경내에 이르듯, 번잡했던 마음을 내려놓으며 차를 마실 마음의 준비를 한다. 다실 앞에 이른 손님은 주인이 들어오라 할 때까지 정해진 공간에서 기다려야 한다. 뜨거운 차를 원샷 할 수 없듯, 좋은 차를 만나러 가는 것은 기다림의 여정이기도 한 것이다. 대기하는 동안 손을 씻기도 한다.

 

한편 다실 내에서 차 마실 준비를 마친 주인은 작은 종이나 징을 이용해 들어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는 쇳소리를 통해 시작을 알리는 거의 모든 종교의 예식과 닮아있다. 니지리구치(躙り口)라고 부르는 다실 입구는 가로세로 60센티미터 정도로 작아서 사, 농, 공, 상과 같은 당대 계급 어디에 속하든지 누구나 허리를 굽혀야 한다. 이것은 권력을 으스대던 당대 차 문화에 대한 배격임과 동시에 끝없는 패권 다툼의 시대가 평등하고 평화롭길 바랐던 센 리큐의 염원이기도 하다.

 

다실에서 참여자 모두는 벽에 걸린 한 장의 그림이나 문구, 하나의 화분을 바라보며 느낌을 나눈다. 이어 매우 간소한 식사와 차를 역시 소박한 그릇과 다구를 이용해 나누면서 깊은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과정을 통해 참여한 사람 모두는 경쟁과 살육의 일상에서 평등과 평화의 자리로 나아가 차분히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과 이웃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이는 마치 선방의 스님이 구도를 통해 지극한 고요함에 이르는 과정과 닮아있다. 이를 센 리큐는 '차를 통해 얻는 것과 선을 통해 이르는 경지가 근본적으로 같다'는 의미의 '다선일미(茶禅一味)'라는 말로 집약했다.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와 차 마시는 것 같은 일상은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겠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소리소리 지르지만 정작 삶의 자리에선 몹시도 남성 가부장적이거나 위계적인 경우가 있지 않은가? 센 리큐의 다선일미를 생각하며 나부터 먼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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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맥주 여정이 에스토니아에 이르렀을 때, 발트해의 섬 '사아레마'에 꼭 가보고 싶었다. 전통 기법의 맥주와 훈제 물고기가 기막히다는 것을 어디서 봤었던 곳, 발트 3국 사람들에게 제주도같은 휴양지라는 것 이상의 정보가 없었던 그곳이 왜 그리 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불거리는 숲 속 길을 따라 섬 중간으로 들어서는 내내 마치 오래된 유적을 찾아 나선 라라 크로프트-아! 어쩔 수 없이 연식이 드러난다- 라도 된 느낌으로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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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맥주 양조장'

사아레마 섬에서 얻은 관광지도 귀퉁이에 있는 저 문구 아래 주소, 전화번호가 고작인 곳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잘 찾아오라'는 참 간결한 안내에 기대 찾아가는 동안 '낚인 것일까?'를 한 세 번 정도 생각했을 만큼 길이 좁아지더니만 나타난 비포장 흙길을 따라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 했다. 드디어 주인의 말에 대한 믿음이 거의 사라질 때 즈음 나타난 양조장....... 북유럽 하면 떠올리는 침엽수림 한 중간에 놓인 건물은 양조장이라기 보단 헛간에 가까웠다. 그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때, 안에서 마음 좋아 보이는 분들이 나오시더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오란다. 그러더니 잔을 수도꼭지에 대더니만 콸콸콸 맥주를 따라 한 잔씩 나눠 주셨다. 또 한 번 낚임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려하는 순간, '그냥 편하게 마시라'며 웃어주는 그분은 사아레마 푸루리코따(사아레마 양조장)의 사장님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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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라는 말에 그간의 모든 긴장이 풀린 나는 그때부터 그야말로 들이켜기 시작했다. 사장님 부부가 말씀해 주시는 사아레마 양조장 맥주는 할아버지가 사용했고, 아버지를 지나 자신들이 이어가고 있는 섬의 전통 효모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병에 붙이는 라벨은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동네 한 어른이 그려 준 것이라는 것과 양조장 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장비 대부분은 3대 이상 사용해 온 것이라는 설명을 친절하게 해 주셨다. 뭐 사실 그런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이미 맞게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조금 시큼하지만 풍미 가득해서 라거라 할 수 있을까 싶은 그 집 맥주에 매료되어 큼지막한 잔으로 벌써 두 잔째를 비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행 중에 있었던 영어의 달인을 통해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자신들은 그곳에서 살며 그만큼 맥주를 생산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소량으로 만들기에 발생하는 폐수는 비닐하우스 안에 만든 자연정화 시스템을 통해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고, 술지게미는 뒤편의 오리와 닭에게 나눠주면 된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발생한 지게미를 차에 싣는 것을 돕기도 했다.

 

좋다고는 했지만 내심 궁금했다. 이 정도로 먹고사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부부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서 살기에 충분히 버니 문제없습니다. 여기에서 사니까요. 사실 지난해부터 읍내에 있는 식당에 납품을 하게 되면서부터 물량이 달려서 전통 효모에다가 구매한 효모를 조금 섞어서 사용하는데요, 양이 많아지니 힘들어요.

 

앞서 발트해의 제주도라고는 했지만, 숲을 다 밀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비행장을 하나 더 지어서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여 바글바글 아일랜드로 만들겠다 외치는 이 땅의 제주도를 생각하면 그건 경기 남부 오산! 고즈넉한 중세 고성과 작은 호숫가, 시외버스 터미널인가 싶은 공항과 읍내 정도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 숲인 그곳의 식당에서 뭘 그리 대단히 소비하겠는가 싶었다. 백 년도 넘은 숲 속 농가와 그만큼 오래된 양조장을 소중히 지키며, 소박하고 천천히 살아가는 이들이 정말이지 가슴 시리게 소중했고, 또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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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나누고, 맥주 몇 명을 구매하곤 양조장을 떠나며 나는 왜 그토록 사아레마가 가고 싶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건 늘 안다곤 하지만 정작 일상에선 놓치고 있는 가치와 만나고 싶었던 내면의 SOS에 대한 응답이었던 거다. 내게 사아레마 양조장 사장님 부부는 다선일미, 아니 맥선일미의 소소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고 있는 구도자 같았다.

 

| 추신 |

서두에서 남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생의 마지막 마시고 싶은 것은 트라피스트 맥주다!'

그리고...

이웃 종교와 문화에 대해 어떤 관점과 접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소중한 성찰을 안겨주셨던 스승, 김경재 선생님께서 얼마 전 하늘길에 오르셨다. 카톡이나 전화를 드릴 때면 늘 '고목사, 요즘 같은 때, 고생이 많습니다.'로 시작하는 격려를 잊지 않으셨던, 가끔 뵐 때면 냉면과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교회를 시작하려고 모인다는 것 자체에 하나(느)님의 역사하심이 있다' 말씀 주셨던....... 그 격려와 사랑에 만 분의 일도 갚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초 제자는 선생님이 문득 떠오르면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다.

김경재 선생님, 주신 가르침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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