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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리커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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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이 죽었다

 

2023년 10월,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다. 한 호텔에서 수영을 하다가 그렇게 됐다는데, 그 부고가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석연치 않은 루머의 소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증거도 없는 음모론을 가지고 그의 죽음을 묘사하고 덮어버리기엔 죽기 전 그의 삶이 너무 중요하다. 흔히 그는 실권이 없었던 비운의 총리로 일컬어지곤 한다. 또한 시진핑에 의해 좌절된 개혁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세간의 평가와 별도로, 그에 관해 천천히 분석해 보면 오늘날 중국이 가고 있는 길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그래서 올해 네 번째 길목 칼럼의 주제를 리커창으로 정했다. 이 칼럼은 그가 죽기 전에 썼던 다른 칼럼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소년등과

 

리커창은 소년등과(少年登科)라는 말처럼, 일찍부터 출세길에 올랐다. 1955년 안휘성(安徽省) 허페이시(合肥市)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독보적인 총명함을 발휘했고, 1977년 중국 최고의 명문대인 베이징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중국에서 77학번이라고 하면 그 사람을 다시 봐야 한다. 문화대혁명으로 10년 가까이 대학입시가 사실상 중단돼 있었는데 그렇게 누적된 수험생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리커창은 그렇게 수천만 명 중에 최고의 성적으로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고, 그중에서도 학생회장으로 뽑혀서 그의 탁월함을 재삼 입증했다. 그렇게 탁월한 대학생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발탁되어 차세대 지도자로 육성되게 마련이고 리커창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예외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공청단의 대표주자였다고 해야 옳다. 그는 자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공부만 하기엔 아까운 인재라는 평가 속에 승승장구하여, 38세에는 장관급인 공청단 제1서기가 됐다. 그리고 44세에 역대 최연소 성장(省長)이 됐다. 필자가 중국의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그의 별명은 "콰이줴이(快嘴)"였다. "주둥이가 재빠르다" 정도의 뜻인데, 남의 말을 가로채서 결론까지 단숨에 말해버린다는 그의 습관을 반영한 말이었다. "아마 평생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 필자의 지인이 해준 말이다.

 

시진핑과의 경쟁 관계

 

그러나 소년등과의 뉘앙스 - 너무 일찍 출세하면 좋지 않다 – 가 그러하듯 그의 마지막은 좋지 않았다. 그렇게 된 데는 시대의 탓이 컸다. 그는 후진타오(胡錦濤)의 롤모델을 따라갔지만 후진타오를 배출한 시대는 지나갔다. 후진타오는 북경대와 쌍벽을 이루는 청화대 출신이자 공청단 선배로서 공산당 엘리트 코스를 밟아 국가 최고위직에 올랐다. 그는 일찍이 덩샤오핑에게 낙점을 받았다.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공식적인 1인자의 자리에 오르기 10년 전인 1992년 14차 당대회 때 이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이름을 올렸던 것이다. 그는 선배들의 눈치는 볼지언정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가 없었던 매우 안정적인 황태자였다.

 

그러나 리커창은 달랐다. 그와 시진핑은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공식적인 최고 자리에 오르기 불과 5년 전까지 누구의 서열이 높은지 경쟁하는 사이였다. 덩샤오핑과 같이 후계자를 낙점할 권위를 지닌 막강한 원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여러 원로들의 타협을 통해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 체제가 출범했지만 그 내부 역학은 후진타오-원자바오(溫家寶) 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흔히 잊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원자바오의 서열은 2위도 아니고 3위였다는 사실이다. 2위는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이었다. 원자바오는 주어진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면 되는 실무형 총리였고 더 큰 자리를 욕심낼 필요도, 남에게 견제받을 필요도 없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진핑-리커창 사이는 매우 달랐다. 경쟁을 거쳐 1, 2위를 부여받는 두 사람은 그 순서대로 권좌에 오른 후에도 결코 편안한 사이가 되지 못했다.

 

성급했던 금융개방 구상

 

리커창이 고단한 처지에 있었던 데는 자신의 탓도 있었다.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 실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커창은 경제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답게 중국의 경제체제를 이론적 정합성을 지닌 자유주의 체제로 이행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노력은 2013년 제18기 3중전회에서 엿보인다. 새로 출범한 지도부의 비전이 담겨 있는 "전면 개혁심화를 위한 중대 문제에 관한 결정"에 "위안화 자본항목 자유태환을 조속히 실현한다"는 깜짝 놀랄 문구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1996년에 경상계정에 대한 자유태환은 실시했지만 아직 자본계정 전체에 대한 본격적인 자유태환은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한 나라의 개방 수준을 가늠하는, 나아가 한 나라가 자유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나 마찬가지이다. 중국과 일반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 사라지려는 순간이었다. 국가 비전에 이러한 항목을 관철시킨 리커창은 새로 지정된 상하이(上海)자유무역시범구에서 자본계정 개방을 적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는 관료들의 적극적인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이미 이런 항명의 소식이 공공연히 알려진다는 것부터가 총리의 권위가 도전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결정적인 타격은 2015년에 있었다. 그 해 봄 중국정부는 "중국제조2025"와 "인터넷 플러스"와 같은 장밋빛 산업정책들을 연달아 발표했다. 이를 호재로 받아들인 증시는 폭등했지만 오래지 않아 상승폭을 그대로 반납하는 하락장이 이어졌다. 이렇게 중국의 금융이 불안하다고 여겨지던 8월에 환율공시제도 개혁이 있었다. 이를 외화유출 통제 조짐이라고 인식한 민간기업들은 급속도로 위안화를 처분하고 달러를 취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4조 달러에서 3조 달러로 감소했다. 시진핑 지도부 최대의 위기였다고 할만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누가 관리했으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것은 리커창이었다. 자본계정이 열려있지 않은 상태에서 외화 1조 달러가 증발했는데, 만약 열려 있었더라면 어떡할 뻔했는가? 누가 열자고 했었는가? 역시 리커창이었다. 이 사건 후로 자본계정 개방논의는 중국 정책담론에서 사라졌고 선별적 금융시장만을 개방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 갔었을지도 모르는 길

 

이 두 가지 요인, 시진핑과의 태생적 긴장관계와 2015년 거시경제 관리의 실패가 그 후 리커창의 위상을 결정지웠다. 시진핑의 권력독점을 비판하는 언론들은 리커창을 중국이 갔어야만 하는 길의 상징처럼 형상화하고 아쉬워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은 절반만 맞다. 리커창이 좀 더 적극적인 시장론자이고 중국이 그런 길로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길이 과연 중국을 위한 길이었을지는 쉽게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도국이 자본계정을 개방하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외환위기를 겪으면 국가의 자산이 헐값으로 외국자본에게 팔려나간다. 우리나라의 1997년 외환위기도 그런 현상이었다. 중국이 예외일지 아닐지 속단할 수 없다. 게다가 자본계정을 개방하면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펼 수 없다. 요즘처럼 미국의 고금리가 전 세계 자본을 흡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자본계정이 열려있다면 중국은 심각한 외화유출을 겪었을 테고, 경기가 좋지 않다고 금리를 내릴 수도 없게 된다. 역시 오늘날 우리나라가 빠져 있는 정책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중국은 자본계정이 닫혀 있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자국의 금리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열린 자본 체제가 과연 보편적인 것인지, 중국에게 적합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리커창에 대한 평가도 그래서 쉽지 않다. 어쨌든 중국이 갔었을지도 모를 그 길과 함께 리커창은 떠났다. 굿바이, 리커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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