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을 촉구하는 작가들의 한 줄 성명을 읽다가 문득 서글퍼졌다.
414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 줄 성명을 냈다. 그들은 저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까. 때론 욕설을 뱉으며 어쩌면 술잔을 던지며 열패와 좌절과 모멸의 시간을 보냈을까. 삶의 신비와 천체의 비밀을 시와 소설로 담금질할 시간을 빼앗긴 들과 같이 바라보아야 했던 작가들, 그들은 진주조개가 몸에 침투해 온 이물질을 뱉어내기 위해 진주를 빚어내듯, 정신을 함락한 저 무도함을 다시 문학으로 재탄생시켜야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를 다시 반복할 것이다. 유독 눈에 자주 띄는 어린이와 미래 세대를 염려하는 한 줄 성명을 읽다 어쩌면 지금 이 現在가 저 未來를 구원하기 위해 작가들은 또 그렇게 글을 지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저 겸손한 미소를 짓게 된다.
마음을 흔든 작가들의 성명을 몇 줄 옮겨 적는다. (2025. 3. 25.)
한 줄이 아니라
만 줄이라도 쓰겠어.
탄핵탄핵탄핵
파면파면파면.
그러나 이 한 줄로
족하지.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즉각 파면.
- 성기완 시인
헌재야!
봄 온다.
꽃 핀다.
- 송종원 문학평론가
우리를
파괴하지
못한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 신샛별 문학평론가
사실이어서는 안 되는 일들로
가득한 겨울을 보냈습니다.
못 쓴 소설 같은 현실 덕분에
제대로 된 소설을 쓰지 못했고,
거리로 내몰린 국민은 집단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온당히 마땅한 일로 채워진
봄을 맞고 싶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하고 민주주의를
지켜주십시오.
- 오정연 소설가
우리는 살아 있는
블랙박스다. 기억의
눈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이다.
- 은유 르포 작가
국민을 향해 총을
든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는다면
그건 방아쇠를
마저 당기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
아닌가? 헌재는
역사에 죄를 짓지
말라.
- 이후경 소설가
진짜 같은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지, 소설 같은 일이 진짜
벌어지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소설도 누가 이렇게
써봐라, 편집자가 가만두나. 벌써
교정, 교열했지.
- 임현 소설가
그 거리에, 그 빛에, 그 함성에,
그 노래에, 그 깃발에, 그
발걸음에, 그 트랙터에, 그
버스에, 그 유리창에, 그 고개에,
그 은박지에, 그 눈발에, 그
밤에, 그 바람에, 그 꽃망울에,
그 눈물에, 그 웃음에, 그
아침에, 그 하늘에… 우리는
쓴다, 그 너머를. 당신들은
주문하라, 파면을.
- 최규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