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환멸이 느껴질 땐, 책을 읽어요!
정희진 저,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2023)
'공무원이 되려면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
기계적 평등을 개혁이라 주창하는 정치집단이 내세운 이 총선공약은 현실정치에서 젠더 이슈가 흥행에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포괄적 성교육 등 어려운 개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젠더나 섹슈얼리티는 이처럼 사회 전반과 연결된다 하겠다.
2005년의 저서 "페미니즘의 도전"을 통해 한국사회 전반의 남성중심성을 예리하게 비판하며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문했던 여성학자 정희진이 지난해 11월, 같은 제목에 '다시'를 더해 시작을 발표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페미니즘 리부팅의 시기를 지나며 한국사회의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인식과 해석의 기본값으로 자리매김한 반면, 남성과 그 문화는 여전히 구시대적 젠더 위계와 맨박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평등 담론에 대해 당혹스러움, 혐오를 쏟아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여성운동 내에서도 소위 '순혈적 여성' 정체성에 천착하여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난민, 장애인 등의 사회적 소수자를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배척하는 그룹이 등장하고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 인식 속에서 저자는 저출생, 김건희 이슈(앗! 여사를 붙이지 않고 이렇게만 적으면 영부인 모독으로 기소가 되려나?), 군복무, 여성할당제, 피해자 중심주의, 성적 자기 결정권 등 매우 구체적인 사회적 주제 혹은 성정치학의 논쟁들에 대해 특유의 분명하고 신랄한 평가과 재해석을 가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정의가 아니면 불의와 같은 이분법적 도식의 해체와 사회적 규범이 정한 경계의 장막 허물기, 또한 여성학을 포함해 기존 담론에 대한 전복적 재해석을 시도한다.
언제나 그렇듯 정희진의 글은 경쾌하고 분명하다. 그 날렵한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매우 심각한 사회적 주제들과 만나게 되고, 그에 대해 저자가 내리는 평가와 결론과 함께 깊은 사유에 이르게 된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은 성정치학. 혹은 사회 전반에 담긴 섹슈얼리티적 요소에 대해 매우 선명한 성찰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저자의 논지에 대한 찬성유무를 떠나 상기 주제들에 대한 사유에 있어 유의미한 정보를 얻고 싶은 이들, 혹은 성정치학이나 페미니즘을 주제로 책읽기 모임을 구상하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