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70

구드룬 파우제방, 2016 -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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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보물창고 청소년문학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동네 언니들은 벌써부터 소금 사재기를 했습니다. 정부가 아무리 안전을 외쳐도 식구들 먹거리를 걱정하는 주부들은 마음이 다릅니다. 핵 문제가 당장 내 밥상까지 올라온 이때 핵 이야기를 다룬 어린이 청소년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구드룬 파우제방(1928~2020)은 주로 환경, 평화와 정의, 전쟁과 인권 문제를 주제로 문학작품을 쓴 작가입니다. 그는 교사로 일하면서 소설을 발표하다가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책과 원자력 발전소의 핵사고로 일어난 일을 그린 작품 <구름>은 평론가들로부터 '인류의 양심을 뒤흔들어 깨우는 이야기'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독일에 사는 소년 롤란트네 가족은 여름휴가를 맞아 외가가 있는 쉐벤보른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당시 불안한 정세를 걱정하며 휴가를 미루자는 엄마 말에 아빠는 "정치는 정치가들이 다 알아서 할 거야, 우리가 여행 가는 것 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말이야"라고 합니다. 여행 도중 숲에서 강렬한 섬광을 보게 되고, 곧이어 거센 열기와 돌풍이 차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상황을 겪게 됩니다. 핵폭발이 일어난 것입니다.

 

핵폭발 뒤 사람들이 겪는 처참한 상황들이 묘사되는데, 핵폭발로 도시가 파괴되고 자연에는 풀 한 포기 없고, 강물조차 오염되고, 사람들은 원자병과 티푸스로 죽어갑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지하실 같은 곳에서 몸을 의지하고 살아가는데, 감자 한 알을 훔친 아이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해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양식과 물건을 훔치고, 아무도 다른 사람의 아픔과 죽음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생각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홀란트네 가족도 예외가 아니어서, 외할머니 할아버지는 핵폭발로 돌아가시고, 누나와 동생은 원자병으로 죽고, 핵폭발 당시 임신 중이던 엄마는 팔다리가 없는 아기를 사산하고 죽습니다. 결국 롤란트와 아버지만 살아남습니다.

 

4년이 흐른 뒤 아버지는 핵폭발 뒤에 살아남은 최후의 아이들을 모아 학교를 엽니다. 수업 도중에 어떤 아이가 아버지 얼굴에 분필은 던지며

"당신은 살인자야"

라고 소리를 지르고, 한 여학생이 아빠에게

"선생님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했죠?"

라고 단호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핵폭발이 있기 전 롤란트의 아빠는 항상 "도대체 우리가 그 문제를 두고 뭘 할 수 있겠니?"라고 하며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평화를 보장해 줬다는 사실을 지치지 않고 이야기했던 사람입니다.

 

롤란트는 아빠 세대의 모든 사람에게, 핵폭탄이 터지기 여러 해 동안 인류의 멸망이 준비되고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했다고 비난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라고 하며 핵폭발 당시 어른이 아니었던 자신이 아이들에게 읽고, 쓰고,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들은 다시 서로 존중하는 법,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줄 알아야 하고, 대화하는 법을 배워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는 법을 찾아내야 한다. 책임감, 사랑을 배워 너희들의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 세상이 오래가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야. 왜냐하면 너희들은 쉐벤보른에 남은 최후의 아이들이니"

 

저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했다가 원망을 듣곤 했습니다.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는 것입니다. 한 남학생은

"여동생이 있는 우리 집에 이 책을 둘 수가 없어요."

라고 하며 책을 제게 맡기기도 했습니다. 그들과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되는 것일까요? 이 책이 구드룬 파우제방의 상상력의 결과이지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결과와 이후 태어난 기형아기들, 방사선 피폭으로 질병을 앓게 되거나 사망한 주민들과 비행기로 콘크리트를 실어 날라 불울 껐던 조종사들의 피폭, 사망사례를 본다면 그의 상상이 지나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작가가 이 책머리에 '나의 아들 마르틴과 우리들의 미래를 위하여'라고 쓴 말을 기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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