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48 - 겨울이 봄을 만나는 Wave Hill, 나무와 의자 이야기
Sue Cho, “Come and Rest in this Bench”, 2022, Digital Painting
2월 들어 60도쯤 올라가는 토요일이다. 30-40도의 싸늘한 날씨가 계속되다 모처럼 맞이하는 따뜻한 날씨다. 사람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강변에는 벌써부터 소매 없고 배꼽이 훌렁 보이는 티를 입고 조깅을 한다. 집에 있으면 억울한 생각이 드는 날이다. 브랑스나 부루클린 식물원에 갈까하다, 겨울의 끝, 봄이 시작하려는 2월은 아직 황량해서 넓은 식물원이 부담스러워 망설이게 된다. “아! Wave Hill이 있지!” 이곳은 봄의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없이도, 썰렁한 2월에도 왠지 아늑함이 있을 것 같았다.
웨이브 힐(Wave Hill)은 브랑스의 리버데일에 위치한 28에이커의 아담한 정원인데 문화, 교육 프로그램도 겸비하고 있다. 허드슨강과 팰리세이드를 전경으로 잘생긴 나무들, 정원과 온실에 핀 꽃들도 구경하고 산책로를 거닐면서, 특색 있고 운치 있는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면서 한나절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아기자기하고 짭짤하게 있을 것(카페, 갤러리, 선물 가게)이 다 있고, 품격 있는, 그렇다고 과하지 않고 받으면 기분 좋고 미소 짓게 하는 종합선물 세트 같은 곳이다. https://www.wavehill.org
그러고 보니 3년 전 2월에도 이곳을 찾았다고 친절하게 아마존 포토가 이야기해준다. 그때 온실에서 화초들을 자상하게 돌보고 또 안내해주던 정원사 Harneks Singh의 말이 떠오른다. Wave Hill은 브랑스 식물원(New York Botanical Garden)이나 부루클린 식물원(Brooklyn Botanic Garden)처럼 온실은 크지는 않지만 작은 화분에다 진열하여 100여 종이 넘는 특이한 선인장과 다육식물(succulent)을 한눈에 쏙 들어오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Crapemyrtle Cultivar, Front of Wave Hill House, planted 1996 (Left)
Wave Hill 을 산책하면서 잎을 다 벗은 겨울나무들을 본다. 마치 시네몬 향이 날 것 같은 나뭇가지는 그 자체로 만도 아름답다. 뒤틀린 나뭇가지와 잔디밭의 그림자가 빚어내는 실루엣은 멋진 자연의 설치작품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질문의 책”의 시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나무들은 왜 그들의
뿌리의 찬란함을 숨기지?”
“봄은 어디서 그토록 많은
잎사귀들을 얻을까?”
이곳에 오면 마치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잎이 다 떨어진 나목들에서
뿌리의 찬란함을 볼 수 있어요.”
“붉은, 노란 나뭇가지 속에서
숨겨진 봄의 나뭇잎들을 보아요.”
걷다 보면 특색 있는 의자들이 눈에 띈다. 7년 전쯤 키모 치료 받기 전, 미장원에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이 곳에 들렀었다. 등이 둥그렇게 굽은 의자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그때는 잘 생긴 나무들보다 곳곳에 흩어진 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걸어 다니다 쉴 곳인 의자가 중요했고 의자 밀도가 높은 이곳이 고마웠나 보다. 이때부터 한동안 의자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곤 한다.
Wave Hill의 각양각색의 의자들
햇빛 샤워를 받으며, 아드로인댁 의자에 앉아 허드슨 강과 팰리세이드 절벽의 경치를 마주하며 나이 지긋한 남자분이 혼자 앉아 있었다. 내가 산책을 다 하고 다시 거꾸로 돌 때까지 그곳에 공허한 시선으로 앉아 있다. 전에는 누군가와 함께 이곳을 찾았을 텐데 이제는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닌가 하고 내가 상상한 스토리에 마음이 짠해진다.
위쪽 퍼골라(pergola)는 담쟁이나 등꽃이 피면 그늘막이도 되고 운치가 있을 텐데 아직은 썰렁하다. 입구에 앉아 있던 두 여인도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알록달록한 스웨터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와 딸은 아닌 것 같고. 이들은 상담사와 내담자인데 어두운 방에 갇혀 상담을 하는 대신 이 정원에서 걷기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Walk and Talk therapy를 하고 있다고 또 소설을 써본다.
Upright European Hornbeam, Ecology Building Steps, planted 1974
트레일이 길지 않아 한 방향으로 돌고 다시 역방향으로 돈다. 같은 길인데 방향에 따라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인다. 트레일의 양쪽 입구에 두 군데 발을 털고 가라는 표시와 그 이유 그리고 아래 신발을 문지르는 솔이 설치되어 있다. 트레일에서 흙을 통해 침입식물( invasive plant)을 퍼뜨리는 것을 막는 것이다. 전에 리버사이드 파크에서 본 파랗고 보라색 구슬 같은 베리가 무얼까 궁금했었는데 안내판에 포슬린 베리(Porcelain Berry)라고 사진과 함께 있다. 이렇게 예쁜 베리가 요주의 리스트에 있다니.
갤러리 건물 뒤쪽에 물이 나오는 조그마한 연못 있는데 그 속에 얼굴 조각이 재미있다. 왜 여태 못 보았지? 마치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발견한 양 뿌듯하다. Ecology Building 옆 계단 위로 올라가다 거대한 부챗살처럼 퍼진 나무를 보았다. 이름이 “Upright European Hornbeam”이라고 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뭔가 원더풀한 것을 보면 나만의 세리모니가 있다. 그 앞에서 요가의 트리 포즈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한 다리로 서고 다른 다리를 접고 두 팔을 벌려 나무 모양을 하고.
Sue Cho, “Be my Guest”, 2022, Digital Painting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라는 파블로 네르다의 또 다른 질문에
“이곳에 오면 나였던 아이는 사라지지 않고
아직 내 속에 있어요”
라고 답할 수 있다.
2월의 황량함에서도 봄이 오는 느낌이 오감을 통해 전해진다. 그래서 2월이 좋다. 앞으로는 더 좋은 날들이 올 테니까.
PS 1. Wave Hill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자세한 소개는 아래 사이트를 추천한다.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document_srl=2928081&mid=FunNY2
PS 2. 뉴욕시에 걸어 다니면 공공아트 영구 설치작도 있지만, 매년 바뀌면서 설치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많다. 이번 달 의자와 나무에 대해 생각을 해서 내 눈에 보이는 건지, Madison Square Park를 지나다가 수십 개의 의자와 그 위로 나무 가지가 솟아나는 광경을 보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Hugh Hayden, ‘‘Brier Patch” @ Madison Square Park until 5/1/2022
Hugh Hayden은 African American 아티스트로 이 설치작품에서 100개의 초등학교 스타일 (책상이 붙은) 의자를 제작하여 나뭇가지로 서로 뒤엉켜있는 교실을 구현했다고 한다. 나뭇가지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교육의 장에서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지만 그 것을 막는 여러 가지 장애요소, 불평등을 표현한다고 한다.
https://madisonsquarepark.org/art/exhibitions/hugh-hayden-brier-pa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