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IV_노란조끼 네번째 시위 :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노란 조끼(Gilet Jaune, Yellow Vest)에 관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형광색 노란 조끼는 프랑스 운전자라면 누구나 차량에 비치하고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입어야 하는 법률적 규제 사항이다. 그러니 노란 조끼를 입고 시위한다는 것은 운전자들이 뿔났다는 의미이다.
프랑스 사회 양극화 심화로 촉발된 이번 시위가 주말 토요일마다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2018년 11월 17일 첫 번째 시위가 발발하고 점점 세력을 키우며 4번째 시위까지 벌어지고 난 다음 쓴 것이다. 시위대의 규모가 커지면서 점차 과격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임의적인 편집을 통해 폭력성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기사로 인해 고국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안부 인사가 연이어 SNS를 통해 왔었다. 이역만리 떨어진 곳의 일을 생각해 주고 염려해 주는 마음이야 언제 들어도 고맙기는 하다. 하지만 걱정과 우려가 섞인 안부 인사가 연이어 도달하니 일일이 답하기도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연락해온 지인들이 이 글을 읽어 줄 리는 없지만 그래도 한 줄 단상을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누군가 그랬다 “Nous avons coupé des têtes pour moins que ça.” 번역하자면 ‘우리는 이보다 덜 한 사안에도 단두대로 보낸 적이 있다.’ 말만 살벌한 것이 아니라 실제 시위가 살벌하기도 하다. 근무지인 OECD에서도 질레죤느 시위 때 각별히 주의하라는 당부를 메일로 반복해서 받은 덕분에 지난 한 달 동안 주말이면 방콕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시위에 휩쓸려 사단이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집 앞까지 시위대가 몰려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안전이 우선이지 하면서 지냈다.
느려터진 프랑스 문화에 생기를 불어넣고자 했던 논리정연하고 야심 찬 마크롱은 사회당에서 정치 이력을 시작하여 성장하였으나, 그 조직을 뛰쳐나와 전진하는 공화국이라는 중도 성향을 표방하는 (그러나 정책의 내용은 우파와 유사한) 당을 만들어 자국의 유권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정책이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젊고 잘생긴 것에다 24살 연상의 부인과의 순애보까지 덤이 되어 초반에 인기가 치솟았다. 명석한 두뇌에 인기까지 얻었으니 당선 초기 그의 행보엔 거침이 없었다. 거칠게 표현해서 기업에겐 당근을 노동계급에겐 경쟁 구도를 도입하려 했다. 정책의 입안과 추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의 말과 태도는 다수 프랑스인의 감정을 건드리고 말았다. 확신에 찬 말투와 때론 오만하게 느껴지는 그의 태도는 다수 대중에게 모욕감을 안겨 준 것이다.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건드린 건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번 주초 그의 특별담화의 첫 문장을 듣는 순간(물론 내가 알아들었을 리는 만무하고 큰아이가 중간중간 중요 내용을 통역해 주었다. 불어 과외비가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이 사람 상황판단을 잘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끈하게 면도한 얼굴로 폭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선심 쓰듯 최저 임금 인상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마음을 열어줄 프랑스인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자들을 뿔나게 만든 이유는 경윳값에 붙는 세금을 대폭 인상한 것이다. 물론 이전에 기업과 고소득자의 세금 감면에 대해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경유세 인상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 것이다. 특히 경유 트럭을 모는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부자들의 감세를 메우려 한다는 인식으로 인해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담화 내용은 마치 대놓고 얼굴에 술잔을 뿌리거나 침을 뱉어 놓고는 지폐 몇 장 집어 주는 것으로 무마하려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들은 마크롱의 태도와 시민들의 좌절감에 대한 분석은 없고 최저 임금 인상 폭이 예상치 못하게 높은 수준이고, 앞으로 연말 휴가 시즌이 겹쳐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과 이를 막는 경찰도 휴가를 가야 되니 시위가 사그라들 것이 마치 기정사실인 양 써대고 있다. 예측이나 전망은 현자나 도를 통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깜냥도 안되는 그리고 지금의 예측이 감히 맞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지만 내 주제에 턱도 없는 예언을 하자면 성난 노란 조끼들은 거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은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 내릴 때까지 거리에서 저항할 것이다. 그리고 파르라니 면도한 단호한 그의 입에서 나온 폭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은 현실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이미 지난주 시위 때 장갑차가 등장하였다. 노란조끼, 그들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모욕감으로 마음이 돌아선 시위대와 폭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크롱의 단호한 어조는 끝내 더 큰 충돌을 불러올 수 밖에 없으리라.
나는 진심으로 다시 한번 나의 예측이 틀리기를 바란다.
2018. 12. 13.
오늘의 사족 : 1. 앞으로 연재할 노란 조끼에 관한 글은 파견 근무로 파리에 체류할 당시인 2018년 11월부터 1년 넘게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졌던 시위에 대한 일종의 취재기이다. 주말이면 파리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를 따라 다니며 드는 생각을 정리하였다. 2. 경유세 인상이 노란 조끼 시위를 촉발하기는 했으나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기후변화협약에 따르면 각 국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여야 하는데 가격 즉 세금을 인상하여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확실한 답이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마크롱 정부의 경유세 인상은 고육책이지만 이 사안이 부자 감세와 맞물리면서 대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3. 도심에서 떨어진 주택가에서도 시위대가 지나간 자리는 이런 폭력의 흔적이 남는다. 아래 사진은 아는 분이 자신의 집 근처에 찍어서 보내주었다.
시위대가 지나간 자리는 늘 이런 폭력의 결과가 남는다.
연도의 매장 유리는 분노한 시위대의 돌팔매로 깨져 있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4. 모욕감이 폭력으로 표출되는 걸 장갑차로 막을 수 있을까? 노란조끼는 극우에서 극좌까지 스펙트럼이 광대하다. 어디든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은 폭력으로 해결하고자 하나 결국 사태를 악화시킨다.5. 2016에 시작한 우리나라의 촛불시위 기간 중 나는 더 과격한 방법인 횃불을 들자, 더 강력한(폭력적인) 의사 표현이 필요하다는 여러 말과 글을 보고 들었다. 그 유혹을 뿌리치고 마지막까지 비폭력 시위를 이끌어간 각성한 시민들이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