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현우진의 홀로요리]

c8d6ca

현우진의 홀로요리 9 - 오장육부가 돌아오는 영혼의 스프

posted May 28, 2019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현우진의 홀로요리 9 : 오장육부가 돌아오는 영혼의 스프

배 중탕과 토마토-양배추 스프


우리는 직장이나 사회 생활하면서 한번 잘 살아 볼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인 행동이 자주 회식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면 회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은근히 조직에 바라는 게 많아진다. 바라는 걸 얻기 위해 우리는 몇 년 동안 오장육부를 바깥으로 꺼내 놓는다. 위 바쳐 술 마셔, 간 바쳐 야근해, 뇌 바쳐 내 생각은 없으니 괜찮다한다. 그리고 쓸개를 바쳐서 뭐라 해도 실실 웃고, 혀를 바쳐 듣기 좋은 말만 한다. 그런데도 왜 승진도 안 되고 회사의 내 위치가 이 모양이냐고!!! 이러면 공허해진다. 그러면 혁명이 아니라 반란을 꿈꾸게 되고, 모난 돌이 정을 맞게 된다. 원래 모난 돌이면 정을 안 맞고 옆으로 치워진다. 그러나 모나지 않은 척하다가 조직 내에서 모났음이 ‘발각’되었을 때 정을 더 많이 맞는다.

정 맞을 때를 대비하여, 아니 이미 맞고 있으니 우리는 혼자 밥을 먹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난 그게 훨씬 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에 승진하고 승승장구 위로 올라가면 저절로 회식자리에 사람들이 모인다. 권세가 있으니까. 그러면서 혼자 집에서 밥해먹고 혼자 식사하는 사람을 사회부적응자로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비웃다가 허망할 수 있다. 갑자기 메인스트림에 있다가 아웃사이더 라인으로 바뀌게 될 때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도 메인 스트림에 있지 못하고, 핵심 라인에 있지 못하지만 업무에서 유능한 직원은도늘 허망함을 느껴야 한다. 그럴 때 또 패배자의 술로 달래면 위험하다.

일을 정말 열심히 할 때가 있다. 당연히 조직을 위해 일할 때도 있다. 승승장구해도 바쁘고 좌천돼도 이상하게 바쁘다. 왜냐면 기쁨과 슬픔을 달랠 회식자리를 찾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 내 수평적 사고와 노동자 참여프로그램(상담프로그램이나 기타 등등)은 승승장구하는 사람이건 일희일비하는 좌천된 사람이건 모두 다 필요하다. 허망함으로 잃어버린 행복감과 자존감을 찾기 위함이다. 안 그러면 술로 푼다. 또 그렇게 밖에 배우지 못했다.

글을 써보니 나도 위험했다. 나 역시 자주 어울려 회식을 했었다, 허망해서 집에 들어와 라면이나 냉면을 끓여먹고 한잔을 더 했다. 일이 바빠서 스트레스 풀기 위해 마시고, 복잡한 뇌를 위해서 먹었다. 나중에는 이렇게 일 잘하는 데 왜 시스템이 날 더욱 고립시키는 것일까 하는 허망함으로 더욱 나의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특히 운이 나빠질 징조가 올때 그럴 수 있다. 밖에서 삼겹살 먹고 집에 돌아와 다시 라면을 끓여 배를 채울 때이다.

나 역시 돌이켜 보면 내가 위험했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최근에는 자주 회식하더라도 다짐한 것이 있다. 인스턴트를 자주 먹지 말 것, 신선한 재료로 신선하게 가끔이라도 먹을 것, 지역 농산물을 자주 먹을 것.  (올해는 텃밭 신청을 안했다. 다른 지역으로 승진 발령 받을 거 같아 김칫국 한 사발 들이킨 결과다. 덕분에 다시 도시인 같은 피부를 얻었다.)

어쨌거나 나쁜 운이 오는 징조를 겪고, 이제야 정신차리고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작은 행복감을 찾으려고 하고, 삼시 세끼 만족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도 회사 생활을 하니 이런 저런 스트레스와 회식으로 목도 붓고 위장도 붓는다. 초여름이라 에어컨을 트니 몸도 으스스하다. 특히 지난 번 출장 때는 너무 신경을 쓰고 담배를 몇 대 물었더니 목이 부었다. 이비인후과를 가서 약을 받아와 먹었다.

그러다가 어릴 때 엄마가 편도선이 부었을 때 해주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나는 어릴 때 환절기마다 목이 붓는다. 어른이 되어서는 편도선이 그만큼은 자주 붓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인지, 고3 때 녹용을 먹어서인지 모르겠다.

엄마가 해주었던 배중탕을 해보기로 했다. 녹용은 비싸니까....배중탕은 배하고 꿀만 있으면 된다. 원래 배중탕이 만들기 복잡한 것 같은 데, 나는 그냥 간단하게 해먹는다.

배의 껍질을 벗기고 속의 심지를 칼로 도려낸다. 예전에 사과 속을 도려내는 동그란 칼이 있었는 데, 그냥 그런 거 없어서 칼로 동그랗게 도려냈다. 손 조심!!  나중에 만들어 놓고 보니 꼭 그럴 필요가 있나 했다. 그냥 배 껍질 벗기고 썰어 넣기만 해도 된다.

원래는 배의 가운데를 구멍 내고 꿀을 넣어서 중탕으로 서서히 끓인다. 그러면 배에서 즙이 나와서 그 국물을 마시면 된다. 그러나 나는 약한 불로 중탕을 낼 자신이 없다. 태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냄비에 살짝 1센티 정도만, 태우지 않을 정도로 물을 넣고 배를 담근다. 그리고 그 가운데 꿀을 부었다. 가스를 돌려 물을 팔팔 끓인다. 푸욱 끓이면 달디단 꿀배즙을 후루룩 마시면 된다. 배도 꿀에 절어서 아주 맛있다. 두 번 해먹고 나니 편도선이 다 나았다.

 

 

사진1-1_resize.jpg

배의 구멍에 꿀을 넣고 푸욱 끓입니다

 

 

 

사진3-1_resize.jpg

으스스하고 피곤한 밤 배중탕을 홀로 드셔보아요

 

 

그리고 쓰린 속을 달래고, 해장국처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야채 스프다. 아니 야채가 일본식 표현이라고 했나? 그럼 채소국이다. 로컬푸드에 방울토마토하고 양배추를 사 놓아둔게 있어 이것을 끓여 먹는다. 방울토마토 서너개하고 양배추를 조금 잘라서 냄비에 넣고 물을 자작하게 부어놓고 끓인다. 위장에 좋다는 양배추만 끓이면 특유의 냄새로 먹기 싫어지는 데, 토마토를 넣으면 향이 괜찮다. 아주 간단하다.
 

 

사진4-1_resize.jpg

양배추와 토마토를 살짝 끓인 국

 

 

끓여놓은 것을 국그릇에 담고 위에 올리브 기름 약간, 발사믹 식초를 약간 뿌려 놓는다.

이것을 아침에 빵과 함께 먹어도 좋고, 누룽지랑 먹어도 좋다. 올리브기름 때문에 느끼하지 않은 고깃국 같은 해장국 같은 느낌도 살짝 든다.

먹어보시라.
당신의 영혼을 달래줄 국이다. 먹고 나면 잠시 밖에 꺼내 둔 간과 쓸개, 뇌까지 제자리에 잠시나마 원상태로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오장육부가 돌아오는 영혼의 스프이다. 물론 출근하면서 곧 다시 빼 놓아야 하겠지만.


 

사진5-1_resize.jpg

빵과 함께 먹는 오장육부를 제자리로 돌려 놓을 영혼의 스프

 

현우진-프로필이미지.gif

 


  1. 현우진의 홀로요리 14 : 토마토-고추장 치킨 스튜

    홀로요리 – 토마토-고추장 치킨 스튜 오늘은 토마토-고추장 치킨 스튜입니다. 만들기 쉽고 정말 정말 맛있습니다. 토마토의 상큼함과 고추장의 매콤함을 겸비합니다. 하지만 이 요리를 소개하기 전에 두 가지의 변명을 해야 합니다. 첫째, 닭도리탕이라...
    Date2019.10.30 Views563
    Read More
  2. 현우진의 홀로요리 13 - 노량진에서 지중해로 데리고 가는 광어 카르파치오

    현우진의 홀로요리 13 - 노량진에서 지중해로 데리고 가는 광어 카르파치오 광어는 횟집에서 가장 대중적인 생선이죠. 머리가 작고 몸통이 납작해서 양식하기도 편하고, 무게 대비 고기가 많이 나와서 인기가 많습니다. 광어를 어떻게 먹어요? 제가 가장 좋아...
    Date2019.09.30 Views567
    Read More
  3. 현우진의 홀로요리 12 - 카레의 기억

    현우진의 홀로요리 12 - 카레의 기억 엄마는 치매. 다행인 것은 치매 중 가장 낮은 등급을 받아서 생활에는 큰 지장은 없다. 다만 노쇠하신 아버지가 안 계시면 걱정이 된다.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엄마는 식사준비를 직접 하신다. 여전히 카레를 잘 만드신다...
    Date2019.08.30 Views319
    Read More
  4. 현우진의 홀로요리 11 - 치킨오이냉채

    현우진의 홀로요리 11 - 치킨오이냉채 여름. 가만히 선풍기를 쐬다 보면 여름의 기억은 역시 치킨입니다. 물론 실과 바늘, 오성과 한음, 구피와 도널드처럼, 치킨에겐 맥주가 따라오긴 합니다. (맥주 대신 콜라라고 써야하나 라는 자기검열이 떠올랐으나, 너...
    Date2019.07.31 Views484
    Read More
  5. 현우진의 홀로요리 10 - 음식에 대한 세 가지 성격

    보리밥 현우진의 홀로요리 10 - 음식에 대한 세 가지 성격 “이 옷은 어디서 사셨어요? 처음 보는 색깔이에요. 국방색(군사문화의 잔재)도 아닌 것이……여기 사람 아니시죠? 코트가 특이한 게 예쁘네요.” 슈퍼 아줌마가 나에게 말을 ...
    Date2019.07.01 Views444
    Read More
  6. 현우진의 홀로요리 9 - 오장육부가 돌아오는 영혼의 스프

    현우진의 홀로요리 9 : 오장육부가 돌아오는 영혼의 스프 배 중탕과 토마토-양배추 스프 우리는 직장이나 사회 생활하면서 한번 잘 살아 볼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인 행동이 자주 회식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면 회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은근히 조직에 바라는 ...
    Date2019.05.28 Views429
    Read More
  7. 현우진의 홀로요리 8 – 라따뚜이, 야 누가 내 수저 더럽대

    현우진의 홀로요리 8 : 라따뚜이, 야 누가 내 수저 더럽대 Yeah 누가 내 수저 더럽대 I don’t care 마이크 잡음 금수저 여럿 패 BTS 방탄소년단 'MIC Drop(마이크 드롭)‘의 가사 일부분입니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위의 가사인 첫줄 제...
    Date2019.04.29 Views930
    Read More
  8. 현우진의 홀로요리 7 - 홀로요리의 기원

    현우진의 홀로요리 7 : 홀로요리의 기원 Part 1 가만히 싱크대 옆에 홀로 웅크리고 앉았다. 어두운 부엌의 창틀에 기울어가는 햇빛이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모아 웅크리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가만히 생각한다. 오래전 이대 앞 치킨 위에 얹은...
    Date2019.03.28 Views303
    Read More
  9. 현우진의 홀로요리 6 - 바다를 만나는 당신, 조개술찜

    현우진의 홀로요리 6 : 바다를 만나는 당신, 조개술찜 당신은 바다를 좋아합니다. 당신이 내륙지방 태생이던, 사는 곳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멀던 간에 바다를 좋아할 겁니다. 우리는 비린내만 맡아도 심장이 뜁니다.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을 찡그릴 때...
    Date2019.02.27 Views475
    Read More
  10. 현우진의 홀로요리 5 - 새벽기도는 텅 빈 마음의 언어였어요

    현우진의 홀로요리 5 : 새벽기도는 텅 빈 마음의 언어였어요 토스트 . 구멍 난 가슴처럼 텅 빈 빵을 메꿔요. 가만히 길을 걷다보면 찬바람이 후욱하고 지나가요. 갑자기 가슴이 시리죠. 텅 빈 가슴은 그냥 시려요. 시린 이를 대신해서 임플란트라도 넣고 싶은 ...
    Date2019.01.30 Views42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