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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길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동행 - 이은경

posted Apr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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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길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동행 - 이은경

이은경 조합원은 꽤 오래 전 부터 알고 있는 분이다. 처음에는 향린교회 교우로 알고 지내다 한 동안 뜸하게 스치듯 보다가 최근에는 르메이에르 빌딩 세종로정신분석연구회 사무실 앞에서 오가다 만나서 인사를 나눈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은 처음이다. 상담을 하는 장소라고 안내 받은 편안한 장소에서 대화를 시작하였다.

Q : 얼마 전에 조카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적이 있지요? 배동교회 이병훈 목사의 딸로 알고 있습니다.
A : 네 맞아요. 형제가 4남매인데 이 목사는 그 중 막내이지요. 제가 맏이고 남동생 2명과 여동생 한명이 있지요. 배동교회는 동생이 민중교회로 시흥에 세운 교회인데 향린교회가 많은 후원을 해주었고 작년에 30주년을 맞이한 교회지요. 동생이 오랜 기간 고생을 하며 현재와 같은 교회가 되었고 가족들도 함께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런 가운데 조카가 잘 자라서 결혼을 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마음이 좋았어요.     

Q : 듣기로는 외할아버지께서 이번에 조만간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으로 훈장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A : 외할아버지(정상윤 선생)는 평북 철산에서 신간회를 만들어 항일 독립운동을 하셨고 해방 전에 남하하여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에 가입하여 국가재건을 위한 일에 열심이셨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체포되어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6.25전쟁이 나고 국군이 후퇴를 하며 처형을 당하셨어요. 외할머니도 수감 중에 병으로 돌아가셨고요. 15세의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한 어머니(정혜열 권사)는 평생을 아버님을 독립유공자로 신원하고자 하였으나 그 동안 ‘빨갱이’라는 이유로 반려되다가 올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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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출소 후 동지들과 함께(뒷줄 왼쪽 세 번째가 정상윤)

 


Q : 어머니의 기쁨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시겠습니다.
A : 당시는 전쟁 중이라 비참하게 돌아가신 부모님의 시신을 수습할 수 없었고 결국 현재도 같은 상황입니다. 그런데다 남북분단으로 인한 정치 상황 때문에 독립활동의 사실을 부정 당하는 것이 무척 힘드셨지요. 어머니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무척 기뻐하셨어요. (*3월27일 오전에 이은경 조합원과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과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은평구청에서 외할아버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 받았다.)   

Q : 외가 쪽의 얘기를 듣고 나니 친가 쪽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궁금해집니다.
A : 친가 쪽은 충청도의 기독교 집안이었어요. 증조부와 작은 할아버지는 장로를 하셨고 증조부는 교회도 세웠다고 들었어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는 증조부와 작은할아버지 그리고 조카들과 같이 살았어요. 아버지는 목사를 하셨는데 제도적인 교회 모습에 염증을 느끼고 목회를 오래하지는 않았어요. 외가 쪽은 유교적인 분위기였는데 그런 가정환경이 부모님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Q : 처음 향린교회에서 봤을 때가 1988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교육부 전도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맞나요? 간단한 삶의 이력을 말씀해 주세요. 
A : 맏딸이었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을 하여 가정의 경제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했어요. 그렇게 10여년을 지내다 주변 환경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나니 대학을 가게 되었어요. 졸업 후 우여곡절 끝에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갔고 전도사로 향린교회에서 일했고 한남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했어요. 20대 후반에 선을 보라는 권유가 있었는데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고 이후에도 같은 마음이어서 결혼은 하지 않고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어요.

Q : 이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말의 의미와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A : 20대부터 결혼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29세쯤인가 선을 보라는 제안을 받고 이성에 대해 마음이 닫히는 경험을 했어요. 그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동료나 선후배 사이로는 잘 지냈는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남자로 생각하게 되니까 마음의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결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되니 답답하다 못해 인생이 끝나는 느낌까지 갖게 되었어요.

Q : 그 당시 본인의 태도나 생각을 돌이켜보면 지금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A : 그 당시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생각하기 보다는 답답함이 더 컸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연세대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다른 학과인 교육심리학과 과목을 듣게 되었어요. 수강하던 발달심리학의 내용 중에 애착이론을 공부할 때 내가 애착과 유아기에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어야 무난한 이성 관계를 형성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어요. 동생인 둘째가 태어나고 6개월 만에 젖을 떼게 되면서 엄마와의 애착 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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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연세대 신학대학 졸업 이후 본격적으로 정신분석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나 과정은 어떻게 되었나요?
A : 30대에 직장을 그만 두고 정신분석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교육청의 지인 덕분에 학교에서 학생을 상담하는 자원봉사 경험도 하였어요. 신학대학을 졸업했기에 대학원을 진학해야 했는데 망설였던 이유는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랑의 하느님을 설교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막내 동생의 격려에 힘입어 대학원에 진학하고 본격적으로 대상관계 이론을 공부했어요. 대상관계이론을 공부할수록 나의 모습이 설명이 되어 더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지요.

Q : 대상관계 이론이 정신분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계기가 된 것 같네요.
A : 맞아요. 대상관계이론은 멜라인 클라인에 의하여 발전된 이론인데 그 당시 평택대학교의 이재훈교수가 공부하고 귀국해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요. 나는 한신대학원을 다니면서 강의도 듣고 공부 모임도 하면서 졸업논문도 대상관계이론으로 썼어요. 신학원 졸업 후 한남교회 전도사로 목회를 하였고 이후 대상관계연구소에서 스텝으로 일하며 본격적인 공부를 했어요.

Q :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떤 격려와 도움이 있었나요?
A : 대학을 졸업하고 문화센터 등에서 꽃꽂이 강사를 하며 용돈을 벌었지만 대학원 등록금을 해결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렇게 지내는데 막내 동생 이병훈목사가 대학원 진학을 적극 권하면서 ‘사람의 일이 사람이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대로 대학원에 진학하니 주변의 다양한 도움이 있었어요. 향린교회는 장학금을 주었고요.

Q : 의사가 병원에서 행하는 정신치료와 정신분석을 통하여 상담이라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치료는 어떻게 다른가요?
A : 최근에는 정신과에서도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자세한 치료 방법은 다르겠지만 대체적인 과정은 비슷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병원에 오는 환자들의 증세가 좀 더 무겁고 병원은 약 처방을 할 수 있고,   의사가 공신력 측면에서도 낫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병원은 기록이 남아 있어서 환자들이 꺼리는 경우가 있어요. 무엇보다 정신적인 치료는 신뢰를 기초로 이루어져야 해요. 외국에서는 병원과 상담의 방식이 협력하며 치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Q : 정신분석학은 프로이드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많이 들어보기는 했지만 자세한 내용을 잘 모르는데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세요.
A : 프로이드는 인간의 행동양식을 심리 내적인 욕구의 충돌 및 조화의 요구를 위한 표출로 판단했어요. 이러한 심리 내적 욕구와 외부의 사회적 요구가 조화될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조화되지 않을 때에는 정신적 질환으로 나타난다고 본 것이지요. 출생 초기에 결핍이 있게 되면 태어난 아이는 그로 인해 불안을 갖게 되고 이후 그로 인한 성격과 행동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결핍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술이나 담배, 약품들에 중독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요. 정신분석적인 상담은 그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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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상담의 치료 효과를 얘기해 줄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A : 한국에 살면서 이해 안 되는 모습 중에 하나가 술에 대한 관대함이에요. 술을 너무 쉽게 구할 수 있고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을 자랑처럼 얘기하잖아요. 얼마 전에 오래 동안 술로 고생하던 내담자를 종결한 경우가 있었어요. 이 분이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예가 있어요. 술 약속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술을 생각하면 다른 것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것이에요. 이 분도 어릴 때 엄마의 애정 결핍이 애착으로 표현되었고 그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오랜 기간 꾸준히 상담을 하면서 술보다 더 좋은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와이프와 딸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애착)이 생기면서 술을 끊게 되었어요.

Q : 길목의 심심활동은 그 동안 수행했던 정신분석 상담 활동을 구체적인 현장에서 적용하는 뜻 깊은 활동으로 생각됩니다.
A : 길목에서 연결해 주는 상담의 경험은 상담자들에게 분명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상담이라는 것이 들어주는 것이고 들어주는 행위의 어려움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분은 충분히 느끼지 못합니다. 내담자는 많은 말을 하지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말을 들으며 하고 싶은 말을 파악하고 연결해주는 역할을 잘 해야 해요. 내담자는 자기를 이해 받고자 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이해 받으면 소통이 되고 그러면서 차츰 내담자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Q : 현대 사회로 발달하면서 갖는 부정적인 모습 중 하나가 소외이고 불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상담이라는 정신 치료행위가 더욱 필요해질 것이라 예상이 됩니다.  
A : 아이가 태어나는 그 시점이 중요하므로 예비부모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을 잘 이해하는 교육이 이루어지면 향후 문제의 해결이 쉬워지리라 생각 되네요. 자본주의의 발달로 개인화 되고 그로 인해 소통이 어려워지는 문제들이 향후 더 심각해질 것이라 보여요. 이를 해결하려는 다각적인 노력들이 필요할 것인데 상담도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Q : 길목의 활동 중에 심심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합원이 많은데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길목 조합원들에게 교육하거나 소식지에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방식으로 심심의 활동을 조합 내부적으로 확산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 심심 활동이 갖는 특성으로 인하여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점도 있었다고 생각되네요. 향후 조합 내부의 다양한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관계자들과 공유하고 협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Q : 3월에는 세종로정신분석 연구회 10주년 기념행사(3월30일)도 있고 지난  길목협동조합 조합원 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일들 모두 축하드리며, 지난 10년만큼 향후 지속적인 활동도 기대하며 길목 내에서의 활동도 잘 부탁드립니다.
A : 길목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활동할 수 있어서 의미 있었고 감사했어요. 올해 함께 활동하며 좋은 일들 많이 만들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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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는 쉽고도 어려웠다. 오래 전부터 잘 아는 분이라서 쉬웠지만 그 내용은 전문적인 내용이라 어려웠다. 정리한 인터뷰를 보면서 질문이 남는 부분은 다시 한 번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서 역사를 보았고, 개인의 성장사를 통하여 한편의 다큐를 보는 느낌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어떻든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실천하며 보낸 30년의 시간이 현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몰려드는 아픔을 치유하는 시간이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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