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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모험으로 삶을 노래하다 - 장숙현

posted Jul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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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강인권)

 

몇 년 전에 교회에서 한두 번 얼굴을 보았지만 얘기는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던 장숙현님. 7월 23일에 아이들과 스페인으로 떠난다는 일정 때문에 편집장의 주선으로 인터뷰 일정을 7월 5일로 빠르게 정했는데, 1주일 후로 착각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명동의 증권회사 건물 카페에 마주 앉게 되었다. 인터뷰 전에 살펴보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은 부족했지만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해본다.

Q : 음악을 하는 분으로 알고 있지만 자세한 활동 내역을 잘 모릅니다. 이태리에서 유학했고 성악을 공부했다고 들었는데요, 음악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나는 일들을 얘기해 주세요.

A : 어려서 부터 음악이라기보다는 노래를 좋아했어요. 집안 모임이 있을 때는 늘 노래를 했지요.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합창단 활동을 했고, 중학교 때는 어머니를 졸라서 피아노를 배웠어요. 피아노를 배우면서 클래식 분야로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독일 가곡이 나오는 LP 판을 틀어주고 번역 가사를 알려주면서 따라 부를 사람을 찾길래 손을 들고 따라 해보았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수업시간이 끝나고 저에게 성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Q : 음악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으려면 고등학교 때부터 일반 고등학교와 다른 학교를 가야하지 않는지요?
A : 중학교 때 무용을 하는 친구가 예고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예고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식으로 성악을 배우지도 않은 상태에서 외국노래 두곡 정도 한국말로 발음을 써서 외워 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 계원예고에 진학했어요. 저의 성격이 감정의 기복이 좀 있는 편인데 노래의 분위기에 따라서 감정이 다르게 반응하는 저 자신을 보게 되었고, 노래를 통해 풍부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그 순간, 그 모습이 좋았어요. 대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퇴직을 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져 음악을 포기할까도 생각해봤어요.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겨우겨우 대학교를 졸업하고 합창단(횃불 합창단, 기업에서 운영하는 기독교 계통의 전문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지냈어요. 그런데 같이 합창단을 하는 언니가 같이 유학 가지 않을래 하는 제안을 했어요. 가까운 사람이 그런 제안을 해주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따라 가보자는 생각으로 몇 개월을 준비하여 이태리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고등학교도 유학도 따라가는 모양이 되었지요. 그렇게 음악공부를 하면서 삶의 모든 것들이 음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Q : 이태리에서 유학했던 기간이 5년 정도라고 들었는데 유학 기간 중에 한국에 IMF가 있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쉽지 않을 유학생활이었을 것 같은데요. 
A : 유학생활 하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유학 가서 1년 만에 IMF 발생했어요. 유학생들은 만나면 앞으로 어떻게 될 지에 대해 걱정과 염려로 눈물을 흘렸어요. 저도 이전에는 두 달에 한번 받아서 쓰던 돈을 한 달에 모두 쓰는 상황이 되었어요. 그러던 중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느끼게 되는 행운을 경험했어요. 머물던 집에 와 있던 손녀를 돌봐주는 조건으로 주인 할머니가 임대료를 면제해 주었어요. 그 밖에 예상하지 않았던 좋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유학생활을 버텼고 방학 중에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학생활을 마칠 수 있었지요.

Q :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음악 교육활동을 오랫동안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A : 귀국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저를 보면서 음악을 한 것을 후회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어요. 독창회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할 수가 없었어요. 독창회를 준비하려고 어렵게 1년간 돈을 모았는데 기획사 사장이 그 돈을 가지고 도망을 치는 일을 겪었어요. 유학중에 내가 뚜렷한 활동을 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스로를 위축시켰고, 이 정도에서 나의 음악 활동은 끝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러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모교인 계원예고를  찾아갔는데, 얼굴만 알던 선생님이 저를 알아보시고는 강사 모집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일러주셨어요. 급하게 지원했는데 운 좋게 강사가 되었어요.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그 일이 적성에 맞고 보람도 느끼게 되고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시작할 때는 한 시간이었던 수업시간이 늘어나서 3년이 되었을 때는 강사임에도 매일 학교를 나가게 되었어요. 2002년부터 강사 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17년이 흘렀네요. 

Q : 음악 강사가 아닌 음악가로서 하는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A : 유학 가기 전에는 합창단 활동을 했고, 전에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의 지휘와 성악을 전공한 여성들로 구성된 중창단의 리더 역할도 했어요. 지방자치 단체인 시(市)나 구(區)의 작은 연주에서 지휘도 해봤고 솔리스트 활동을 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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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향린교회에 나온 지 5년 만에 등록을 하였다고 들었어요. 초기에는 남편과 아이들만 교회에 나오다 어느 순간부터 같이 다닌 것 같은데 어떻게 적응을 했는지요?
A : 남편이 그 동안 다니던 교회를 그만 두고 향린교회를 다니겠다고 하여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상한 교회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한 가족이 두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따라 나오기는 했는데 관찰하는 자세로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설교를 듣다보니 생각보다 좋았어요. 다른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도 비교하며 들어봤는데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이전에 들었던 설교는 세뇌를 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어요. 그나마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남편과 교회생활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이해의 폭을 같이 하게 된 것도 있어요. 남편이 사회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진도 찍는데 그 날은 집에 들어오면 꼭 울어요. 언젠가 제주 강정마을에 며칠 갔다 온다고 하더니 하루 만에 돌아와서 울면서 말하더군요. 제주도 강정 현장에서 함께 잡혀가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고. 진심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빨리 적응하도록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아요.

Q : 이제는 향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동안 어떤 활동을 했었고 어떤 기억들이 나는지요?
A : 교회에 다닌 연수는 좀 됐지만 항상 마음은 2년 정도 된 느낌입니다. 향린교회의 가치는 한국사회에서 무척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교회 내에서 저에게 중요한 모임은 청년여신도회입니다. 얼마 전에 회장도 했었지요. 회원들이 교회활동에 아주 열심인데 직장생활을 많이 하는 관계로 시간내기가 어려운 점이 아쉬운 점이지요. 활동을 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도 있었어요. 새로운 활동을 해보려면 의외로 가까운 관계의 집단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가 안됐어요. 소통을 강조하는 분이 오히려 소통에 방해가 되는 모습도 그렇고요. 제가 회장을 할 때 주일 아침에 일찍 나와서 교우들에게 사탕을 주며 눈인사 나누는 활동을 제안했는데 아직도 하고 있어요. 새로운 교우들이 왔을 때 반갑게 맞이하는 향린의 모습을 기대하며 시작한 활동이지요. 

Q : 향린교회를 다니는 기독인으로 자기를 어떻게 얘기하고 싶은지요?
A : 향린에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그 동안 사회적으로 힘들고 아픈 사람들의 현장에 함께 하지 못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관심이 없어서 자세한 내용도 몰랐어요. 남편은 그런 나를 애써 외면했다고 표현했지요. 힘든 곳과 아프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향린의 활동은 꼭 지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평신도의 중요성과 활동도 전혀 몰랐는데 이제 조금 알게 되었어요. 예전에 캄보디아에서 살 때 현지에 와 있는 목사들이 힘없고 약한 아이들을 앵벌이 시키고 선교헌금으로 받은 돈을 생활비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했었고 그런 일들을 묵인하는 분위기도 싫었는데 향린에 다니며 그런 부조리한 모습들을 새롭게 대하게 되었어요. 


Q : 캄보디아에서 살 때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A : 남편이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했는데 사업이 어려워졌고 저도 교민들의 행사에서 합창 지휘를 하게 되었는데 연습하면서 마음고생만 하고 결국 행사는 못했어요. 그래서 가급적 빨리 귀국을 하고 싶은데 남편은 미련을 가지고 계속 있겠다고 해서 부부 사이도 불편해지고 어려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전화가 왔는데 시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남편도 미련을 버리고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지요. 그런 어려움 가운데 저는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어요.

Q : 인터뷰를 하면서 살면서 만나게 되는 소중한 인연을 언급했는데 향린교회에서는 어떤가요?
A : 청년여신도회 활동을 하며 여러 분들과 알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윤선주집사가 떠오르네요. 저와 같은 음악(첼로)을 전공한 분이고요. 음악 하는 사람은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데 이 분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그 동안 보았던 사람들과 다르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람에 대한 배려와 헌신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윤집사가 하는 일은 뭐라도 도와야겠다   생각했고,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오히려 감사하는 기분이었어요. 임재옥 집사는 그 아들이 제가 일하는 계원예고의 제자였어요. 그런 인연으로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지요. 두 분 모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분들이고 자칫 본인들의 마음을 돌보는 데는 소홀한 게 아닐까 염려하여 같이 노래를 부르며 힐링 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는데 너무 바빠서 이루어지지는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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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스페인으로 떠나는 일정이 얼마 안 남았네요. 아이들 교육이 목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요?  
A : 언젠가 큰 아이가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남편이 바로 알아보고 추진했어요.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시절을 보내며 막연하게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번에 구체적으로 진행이 된 것이지요. 제가 공부했던 이태리도 생각했지만 이태리어는 사용이 음악이나 예술분야에 제한적이라 포기했고 프랑스나 독일도 잘 맞지 않았어요. 스페인은 기후도 잘 맞고 사람들 스타일도 잘 맞을 것 같은 나라라고 생각되어 그 곳으로 가기로 했어요. 한편으로 아이들과 해외에 가서 살면 혼자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인데 하는 염려도 있어요. 하지만 생각을 바꾸기로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보내는 시간으로 보내자 생각했어요. 처음 1년은 언어를 열심이 배우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음악아카데미를 해볼까 합니다. 뮤지컬 음악도 해보고 싶어서 가지고 있는 악보를 모두 가지고 가서 스페인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Q : 아이들은 해외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기대하고 있나요? 
A : 큰아이는 디자인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얘기해요. 건축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데 남편이 어릴 때부터 모델하우스에 데리고 다니며 견학을 많이 시켰지요. 그리고 틈나는 대로 해외에 가서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어 견문을 넓혀주었어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건축에 대해 실용적인 관점을 가지고 의견을 얘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어요.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것도 아이들에게 좋았던 것 같아요. 둘째 아이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아이가 왕따 당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학교에 대한 실망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때 저도 학부모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 해결을 한 적이 있는데 아마 향린에서 보낸 시간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과는 대화를 많이 하는데 엄마로서 잘못을 했을 때는 솔직하게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요.         

Q : 길목조합원으로 길목에서 경험한 활동이 좀 있는지요. 그리고 해외로 떠나며 인사 한마디 해주세요.  
A : 조합원으로 활동을 거의 못했다는 것을 이번에 인터뷰 하면서 알게 되네요. 서촌기행 프로그램이 좋다고 들어서 제가 아는 분들을 모아서 김창희 장로에게 서촌기행을 부탁한 것이 유일한 활동이었네요. 저는 향린이라는 이름이 참 좋았어요. 향기로운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오랫동안 제가 꿈꾸고 바라는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 동안도 그랬지만 뭔가를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스페인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곳에 가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좋은 사람과 좋은 운이 저를 지켜주리라 믿어요. 스페인에 오면 저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여건이 되면 얼굴도 보면 좋겠어요.

아마 지금쯤 장숙현님은 이삿짐을 풀고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알아보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느라 바쁠 것 같다. 매일 이해 안 되는 스페인어를 들으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거리에서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해질녘이 되면 약간의 여유로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차도 마시며. 스페인에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바라며 어느 정도 적응이 되는대로 그 곳의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연락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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