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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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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19 - 원다르마센터에서의 하룻밤-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을 찾아서

posted Aug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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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다르마센터에서의 하룻밤-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을 찾아서

 

 

“I should say: the house shelters day-dreaming, the house protects the dreamer, the house allows one to dream in peace.” 

―GastonBachelard,The Poetics of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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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사 와서는 옛 동네를 많이 그리워한다. 바로 나가면 걸을 수 있는 리버사이드 파크를, ‘매기의 의자’ 앞의 커다란 나무그늘을, 나무 사이에 보이는 하늘을, 하늘에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들을. 거기 앉아서 이 생각 저 생각도 떠올리고 마음이 평안했었는데 …   

 

여기는 나가면 앞에도 공사, 뒤에도 공사, 심지어는 바로 옆 유니트도 공사여서 집 안팎으로 소음과 먼지로 어디 한 구석 나만의 쉼터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여름의 땡볕 아래 먼지와 소음과 사람들, 담배연기 속에 걸어 다니려니 힘들고 짜증이 난다. 저녁 먹고 터덜터덜 걸어서 블루 노트(Blue Note), 빌리지 밴가드(Village Vanguard), 조즈 펍(Joe’s Pub),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 재즈 공연도 보고, 팀호완(Tim Ho Wan)에서 딤섬을, 라쿠(Raku)에서 우동을, 바이 클로이(by Chloe)에서 곽버거(Guac Burger)와 코코넛을 빨대에 꽂고 마시면서, 위에 사슬을 달아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회전 그네 타듯이 흔들흔들 해보지만…. 나에게는 자연스럽지 않고 억지스러운 것 같다. 남들은 핫하고 쿨한 곳이라고 하지만 이곳을 탈출하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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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여름휴가를 목적지는 버몬트주 버링턴의 쳄플레인 호수 (Champlain Lake, Burlington, Vermont) 근처로 하루 예약을 하고, 나머지의 행선지는 그 날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열어 놓고 뉴욕 탈출여행을 떠났다. 첫 날은 가는 길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 원다르마센터(Won Dharma Center)에서 하루를 보냈다. 길목인에 ‘홀리 크로스 수도원(Holy Cross Monastery)에서의 하룻밤’으로 뉴욕스토리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뉴욕 근교에 휴식과 힐링이 되는 곳을 찾다가 이곳도 기회가 되면 오고 싶었던 곳이다.

 

원다르마센터는 원불교의 미주 총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영적 평안과 쉼을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마음 수련, 명상센터이다.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뉴욕주 클래버랙(361 State Route 23, Claverack, NY 1251) 426에이커의 광활한 목초지에 자리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앰트랙(Amtrak) 기차로 허드슨(Hudson)까지 와서 택시로 15분 정도 동쪽으로 들어오면 된다. 처음 이곳에 들어서자 제주도에서 보았던 이타미 준이나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처럼 자연의 경관과 조화를 이룬 토마스 한라한 (Thomas Hanrahan)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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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소재라서 그런지  따뜻하고 편안해 보인다. 단순하지만 답답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나무벽으로 막힘, 유리창으로 열림, 그 위에 한 켜 더 있는 빗살무늬의 빔 덕분이 아닌가 싶다. 마치 발을 드리운 것처럼 반쯤 가리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면서 시원한 바람이 통할 것 같은 느낌들이 디자인 자체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글을 읽어보니 메디테이션 룸에서 빛이 직접적으로 너무 강하게 또는 어둡지 않게,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해 간접 빛으로 편안하게 명상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기능적으로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 원불교 뉴욕 원다르마센터 건축가의 설명(blog) §

 

이지연 교무님이 반갑게 안내를 해 주셨다. 불교에서는 스님이라고 부르는데 원불교에서는 교무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몇 년 전 이곳을 찾아 왔다고 하는 “나비”라는 이름의 고양이도  따라 나와, 내가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참하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서당개 삼년에 풍월”이란 옛말이 어찌 그리 맞는지. 나비는 원다르마센터 삼년에 좌선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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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한 나무판자 길(boardwalk)은 교무님들의 숙소와 두 채의 게스트 하우스로 연결된다.  방은 심플하고 깨끗하였다. 게스트하우스 중심에는 마당이 있고 방은 ㅁ자로 뺑 돌려 있는데  방은 각자 분리되었지만 또 원으로 함께 연결된다는 의미로 한옥구조에서 설계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식사하기 전에 주변에 트레일을 돌았다. 이번 여름은 진드기(tick)가 유난히 심하다고 양말을 바지위에 올려 신으라고 하면서, 지나가시던 교무님이 방충제를 신발에 뿌려 주셨다. 이 중 사슴 진드기(deer tick)는 라임병(Lyme Disease)을 옮길 수 있어 산책하고 오면 몸에 벌레가 있나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들풀들이 어쩌면 이렇게 따뜻하게 피였는지… 양희은의 ‘들길 따라서’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었다. 요즘 호랑나비 보기가 힘든데 호랑나비와 흰나비가 날아다녔다. 그러고 보니 노랑나비 본지는 더 오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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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을 따라 걷다 보니, 탁 트인 메도우를 지나 시원한 숲속 길도 나오고 채소밭을 돌아 언덕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물이 흐르는 나지막한 계곡이 나왔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허드슨강과 밸리, 그리고 더 너머 강 건너 서쪽으로 캐츠킬 산자락의 드라마틱하고 멋진 풍광이 펼쳐지지만, 왠지 완만한 경사가 진 너른 초목지에 잔잔하고 편안한 아름다움이 있는 이곳이 마음 수련하기에 더 좋지 않은가 싶다. 마치 내가 볼거리가 많은 센트럴파크에 가면 온통 들떠있고 신나하지만, 리버사이드 파크의 조용하고 단순한 길을 걸으면서 사색을 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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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usually consider walking on water or in thin air a miracle. But I think the real miracle is not to walk either on water or in thin air, but to walk on earth. Every day we are engaged in a miracle which we don't even recognize: a blue sky, white clouds, green leaves, the black, curious eyes of a child—our own two eyes. All is a miracle.” 

“사람들은 보통 기적을 물위나 공중에서 걷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진정한 기적은 물위나 허공을 걷는 것이 아니라, 대지 위를 걷는 것이다. 매일 우리는 우리가 심지어 인식하지도 못하는 기적을 경험한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 푸른 잎, 까맣고 호기심 어린 아이의 눈, 우리 자신의 두 눈들. 모든 것이 기적이다.” – 틱나한   

 

원불교에서는 식사가  채식 위주이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몸의 보양이 필요할 때는 채식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두발 달린 짐승은 허용을 한다고 한다. 아침은 양식이지만 점심, 저녁은 한식으로 채소 위주의 음식이 나오는데 가볍고 건강한 웰빙 음식이 좋았다. 묵언 수행 중인 그룹이 있어 식사시간이나 공적인 공간에서는 묵언으로 지내게 되었다. 대화를 하면서 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너무 많은 자극들로 부터 자유롭게 먹는 것도 새로웠다. 소외되어 외로이 먹는 것과는 달리 음식을 관찰하고, 씹고 삼키고 마시는 것에 집중하고 즐기고, 거기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알아채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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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교무님은 밤에 잘 준비를 다하고 메디테이션 룸 밖에 있으면, 바람도 잘 통하고 반짝이는 반딧불도 구경하고, 소위 상서러운 기운이 도는 명당이라고 자상하게 일러주셨다. 저녁 무렵부터 쏟아진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깜깜한데 한 사람이 전등 빛을 비추고 글을 쓰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앞이 탁 트인 광경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니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반짝 반짝하는 반딧불이 두어 마리 있었다. 비에 젖은 나무에서는 히노끼 향같은 좋은 나무냄새가 났다. 초승달도 잠깐 나왔다 들어갔다. 문득 ‘hiddenmoon’라는 이메일 주소를 쓰고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중국의 옛 4대 미인으로 꼽는 초선이 하도 아름다워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에 숨었다”는 뜻의 폐월이라고 불린 별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여기도 초승달이 부끄러워 숨길 정도로 아름다운 곳인가 보다.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날 새벽 6시에 하는 아침 좌선에 참석해 보고 싶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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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ting in meditation is nourishment for your spirit and nourishment for your body, as well."

”좌선은 우리의 영혼뿐아니라 우리의 몸의 영양분이다“ – 틱나한

 

 

아침5시 반에 일어나려고 의식해서인지 새벽녘에야 잠이 깊이 들었고 머리가 맑지 않았다.  메디테이션 룸에서 30분 좌선을 하는데 나에겐  준비가 안되서였는지 그 시간이 쉽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마음과 몸에 영양분이 되는 제대로 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기 전에 점심을 먹고있는 데 교무님이 잘 지냈냐고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나만의 방을 찾지 못하고 지치고 불만에 찬 마음이 가벼워 진 것 같다. 원불교의 교리나  메디테이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여행길에 하루밤 쉬러 왔지만, 이곳의 자연이, 원다르마센터라는 안식처가, 들풀들이, 수행자들의 묵언이, 교무님들의 배려가, 심지어 ‘나비’까지 나를 가볍게 맑게 해주고 다음의 방을 찾아 떠나게 해 준 것 같다.

한주간의 여행을 끝내고 뉴욕아파트에 왔을 때 나만의 방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뭐가 바뀐걸까? 옆집 공사가 잠잠해진 건가, 더운 열기가 사라진 쾌적함일까? 한주간 매일 방을 바꿔가면서 지내고 온 여행길을 통해, 지금 여기 이 방의 고마움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방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떠올리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Ps. 산책길에 누군가 나무둥지에 돌을 세 개 쌓아 놓았다. 그 근처에 작은 돌을 하나 찾아 얹어 놓았는데 그 돌이 마치 거기에 얹져지기를 기다린 것처럼 딱 맞았다.

One Dharma Center
361 State Route 23, Claverack, NY 12513
http://www.wondharma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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