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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제주 이야기 1 - 제주공항 설러불라

posted Dec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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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이야기 :

제주 이야기 1 - 제주공항 설러불라

 


<프롤로그-할망께>
2019년 10월 22일부터 11월 15일까지 25일간 13개의 사진폴더가 생겼습니다. 13일을 현장에 나갔다는 증거죠. 그렇게 수천 장의 사진을 찍고 여러 날이 지나도록 한 줄도 쓰지 못했습니다. ‘제주’에 대해 쓸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가장 잘 아시겠지만 제주는 섬 하나가 특별자치도인 우리나라 최대의 섬입니다. 제주방언이 독립된 소수언어로 구분될 정도로 제주는 한반도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와 전통이 있는 땅입니다. 울릉도를 ‘울릉’이라고 독도를 ‘독’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제주도를 ‘제주’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단지 우리나라 섬 중 최대 면적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고대 탐라국의 위용 때문일까요?
그 땅은 1948년 4.3항쟁으로 핏물이 얼룩졌고 2012년 강정해군기지로 구럼비가 폭파되었는데 이제 또다시 제주제2공항 건설 강행으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10월 22일 한국작가회의 기자회견을 통해 알았습니다.
국토부의 발주로 사전타당성 용역을 수행한 ADPI(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 보고서에도 현재 제주공항을 활용·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장기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데 왜 국토부는 제2제주공항을 강행할까요? 그건 제2공항을 공군기지로 활용하려는 계획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강정에 해군기지를 만들었으니 그 짝인 공군기지를 만들고자 함이겠죠. 그럼 제주도는 동북아의 화약고가 되겠죠.

제주제2공항예정지 성산읍에는 수산리, 난산리, 신산리 이렇게 3산이 있습니다. 그 중 성산읍 수산리 오창현 청년회장이 기자회견 후 시를 하나 낭송해 주었습니다. 개발로 인해 초등학교와 아이들이 사라질까 애가 타는 심정을 담은 시였습니다.
“제주공항 설러불라”
‘설러불라’는 ‘집어치워’라는 제주 언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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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활주로의 북쪽’을 읊는 오창현 성산읍 수산리 청년회장

 

 

10월 28일, <제주 제2공항 취소, 전략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 한국환경회의 대표자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부동의의 이유는 안개일수 오류, 오름 절취 누락, 지반 정밀조사 생략, 철새도래지 평가 제외, 신도와 정석 등 주변 후보지 평가 왜곡 등 후보지 선정과정의 중대한 결함이 있었고, 폐기물 처리, 상수원 확보, 지하수 보전, 하수 처리, 교통량, 자연환경 훼손과 복원 등 제주도 환경용량, 환경 수용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철새 도래지인 성산 입지의 자연환경, 생활환경, 사회경제환경을 타당하게 조사하거나 보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국토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지역주민을 만나지 않았답니다. 주민수용성 확보가 없었던 거죠.
오후 2시엔 정의당 기자회견을 통해 ‘그대로가 아름다운 제주를 그냥 놔둬’라는 외침을 들었습니다. 정치권의 움직임에는 예의 색안경을 쓰고 보게 마련이죠. 그런데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대표가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으로 참여했더군요. 그동안 탈핵운동권에서 보여준 그의 행보에 대한 신뢰로 이번에는 정의당이 진정성을 보여 주려나 하는 기대감이 살짝 솟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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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가 아름다워 제주를 그냥 놔둬

 


그리고 10월의 마지막 즈음에 할머니를 만났죠. 설문대할망, 당신을요. 꽃이 핀 하나의 큰 오름같은 제주를 포근하게 안고 있는 당신 모습 위로 선뜩한 핏빛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10월 마지막 밤의 투쟁!’
그 포스터에서 제주도를 품고 엎드린 할망을 보자 눈시울이 왈칵 뜨듯해졌습니다. 세상에서 저를 제일 사랑해주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는지, 영화 <지슬>에서 본 제주의 슬픈 역사가 떠올라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할망이 처절히 사랑하는 제주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 멀고 먼 서울에 사는 제 가슴에 닿은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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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밤의 투쟁!

 

 

<제주, 내 슬픈 약속의 섬>
설문대할망, 당신은 키가 엄청 커서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한 발은 성산일출봉에, 또 다른 한 발은 제주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죠. 치마폭에 흙을 퍼 날라 제주를 만들다가 솔솔 샌 흙들이 360여 개의 오름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것이 한라산이 되었다지요. 오백 명의 장군 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들 먹일 죽을 쑤다 그만 발을 헛디뎌 솥에 빠져 자신의 몸으로 자식들을 먹여 살리셨다죠. 할망이 만든 제주도가 저희 부모님 세대에는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더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건설한 제주공항은 한국전쟁 직후 복구되었고 1958년에 ‘제주비행장’으로 정식 설립되었습니다. 제주-오사카 노선이 개항하면서 제주공항이 제주국제공항으로 승격되던 1968년에 결혼한 제 어머니는 제주로 신혼여행을 못 간 것이 못내 아쉬워 제주도 여행 한번 하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이다음에 크면 엄마 제주도 여행 보내줄게’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그만 영영 지킬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지킬 수 없는 슬픈 약속의 섬, 제주에 처음 간 건 추석 연휴에 86세 할머니를 모시고 대가족여행을 했던 2006년이었습니다. 다음 해 사랑하는 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맑은 한림앞바다와 성산일출봉의 장관이 아직도 아른거리는 제주여행은 할머니께 해 드린 가장 잘한 일입니다. 그 후 2012년에 저는 EBS 한국기행에서 <제주>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그 때 저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보다 4.3항쟁을 그린 강요배 화백에게 더 감동했더랬습니다. 또다시 제주에 간 건 2016년 1월, 핵가족여행이었습니다. 올레길 7코스로 서귀포에서 강정까지 걸어가 말로만 듣던 해군기지의 끔찍한 광경을 보고 왔죠. 2017년 8월, 사진여행 차 갔을 때 제주는 곶자왈의 연리지를 보여주고 ‘어머니의 방’이 있는 제주 돌문화공원에서 비 온 뒤 쌍무지개를 선사해 주었습니다.

저와 같은 한국인에게 제주도는 그런 곳입니다. 기념하고 싶을 때, 떠나고 싶을 때, 쉬고 싶을 때, 비행기를 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가장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국내 여행지. 그런 제주는 이미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과잉 관광)과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관광객이 유입되면서 지역의 구성이 변화하거나 주민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떠나는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방문(특히 중국인)까지 겹쳐져 2016년 한 해 무려 1600만여 명이 제주도에 다녀갔답니다. 제주도 면적(1, 849km²)의 5.6배인 하와이 섬(10, 438km²)의 연간 관광객이 그 절반인 800만여 명이라는데 말입니다. 인간의 발길이 닿는 자연엔 반드시 부작용이 흔적으로 남죠. 제주도도 마찬가지로 오폐수 무단방류와 포화상태인 쓰레기 매립장과 교통난과 주차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제주가 감당할 수 있는 ‘환경수용력’을 생각해 볼 때, 무분별하게 공항을 하나 더 만들고 관광객을 받아들이면 제주 생태가 파괴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고, 그렇게 파괴된 제주를 누가 보러 오겠습니까? 그건 제주 생태를 망치고 길게는 관광사업도 망치는 길입니다.   

10월 29일 화 ‘강정앓이의 밤’은 몹시 추웠습니다. 목섶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매서워 올망졸망 웅크린 사람들 가운데 문정현 신부님이 호통을 치시고 노래를 하시고 여기저기서 뭔가를 팔아서 가져온 정성들을 제주에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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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지켜주세요

 

 

10월 31일 목요일은 국회 국토위 예산의결 일이었고 이 날 공론화 결정 연기로 박찬식 상황실장이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그날 밤 7시 제주제2공항 강행저지를 위한 개신교 촛불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이진형 목사가 할망,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결국 제주 사람들의 삶은 풍요로운 제주도의 산과 들, 강과 바다의 희생으로부터 받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성장과 번영을 위해 제주 제2공항으로 또다시 설문대할망의 살과 피로 죽을 만들어 먹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돈을 벌기 위한, 혹은 상상하기도 싫지만 전쟁을 위한 공항 따위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제주라는 섬을 향한 우리의 부끄러운 탐욕을 고백하며 촛불의 정신을 되살리는 정의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이웃 제주의 도민들에게 퍼부어진 폭력을 부끄러워하며 지구의 파국으로부터 벗어날 생명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길의 출발은 바로 이곳,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저지하려고 있는 힘을 다하시는 제주 도민들과의 연대를 다짐하는 우리의 결단에서부터 출발하게 될 것입니다. 설문대할망이 다시 한라산을 베고 누워 평화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제주 제2공항은 백지화되어야 합니다.”
할망, 저는 청와대 앞에 진치고 연일 기도하는 이들과 같은 종교임이 오랜만에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11월 1일 오전 10시 30분, 전국연대기구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 
할망, 저는 11월 2일 밤, 광화문을 지나는 길에 단식 사흘째인 박찬식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이 걱정돼 천막에 들렀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지역주민들과 지자체의 개발 욕구와 건설 경기의 활성화를 바라는 정부와 토건자본의 이해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욕구와 정책이 맞물려 건설된 전국 14개 지방공항이 적자경영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지방공항들이 적자를 벗어나려면 내륙과 제주 간 항공선을 늘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삽질이 삽질을 낳는 것이었죠. 나라의 강줄을 썩게 만든 4대강 사업이 연상되었습니다. 대체 지방공항 살리자고 제주를 죽인다는 게 말이 되나요?

2015년 11월 10일에 발표한 국토교통부 제주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용역 최종 보고를 살펴보면, 애초에 3가지 안이 있었습니다. 기존공항을 확장하는 안과 신공항을 건설하고 기존 공항을 폐쇄하는 안과 기존 공항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제2공항을 건설하는 안이 있었죠. 그 중 최적의 대안으로 제2공항 건설과 기존 공항 두 개 운영을 결정했다는 겁니다. 이것을 국토부는 ‘국책사업’이라고 몰아붙이고 제주 원희룡 도지사는 ‘제주도민 숙원사업인 제2항 건설관련 표출된 갈등 해소 주력’을 공약 실천이라고 하더군요. ‘제주도민 숙원사업’이라니요? 단 한 번도 도민의 의견을 물어본 적  없으면서 제주도민의 숙원이라니요? 차라리 대놓고 토건으로 건설 경기를 일으키고 싶은 대한민국 정부와 근시안적 관광객 유치로 제주를 망치고 말 관련 산업 종사자들과 강정해군기지처럼 제2공항을 공군기지로 활용하고 싶은 미국의 숙원사업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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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박찬식 상황실장



<생명과 평화의 섬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9일기도>
11월 5일 기도 3일째
설문대할망, <제주 2공항 건설계획 전면 취소! 생명과 평화의 섬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 9일기도>가 시작되었음을 사흘째인 11월 5일 신문 기사를 통해 알았습니다. 신문 사진에는 신부님과 세실 등이 백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겨울 파인텍 단식천막을 지키던 세실을 10월 22일, 제주제2공항강행저지투쟁 광화문천막에서 만났을 때 몹시 기뻤습니다. 현장에서 아는 얼굴이 별로 없는 탓이죠.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공동대표인 세실은 알고 보니 제주사람이었습니다. 세실은 9일기도 시작과 더불어 청와대 100미터 옆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문정현 신부님, 문규현 신부님, 허찬란 엠마누엘 신부님, 양운기 수사님, 강정공소회장 잔다크, 평화바람 오두둑(오뚝이=오두희) 및 연대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매일 아침 10시면 100배를 하고 오후 2시 묵주기도를 하고 오후 4시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정오가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서각을 하시던 문정현 신부님이 일어서시다가 그만 바닥에 쓰러지셨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죠. 다행히 큰일은 아니었고 아마 오래 앉아계시다가 어지러우셨는지 중심을 못 잡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정현 신부님은 팔순이십니다. 1966년 27세에 사제가 되셨고, 1974년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을 해오셨지요. 1975년 인혁당사건 관련자들이 사형선고 후 20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자 이를 저지하려다가 무릎연골이 파열되어 5급 장애를 얻은 탓에 지금도 절은 못하시고 대신 반절을 하고 계십니다. 1995년 군산 오룡동성당 주임신부 당시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해 깨닫기 시작해 주한미군지위협정 개정운동과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운동 등에 앞장서셨고, 2011년에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투쟁 및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연좌농성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평화바람’이라는 단체로 군산과 강정에서 활동하시다 서울까지 오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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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랑 문정현 신부님

 

 

잠시 후 문규현 신부님이 오시더니 은행나무 아래 누워 잠시 눈을 붙이셨습니다. 가장 낮고 험한 현장 어디에나 등장하시는 문규현 신부님의 모습이 형님 옆에선 순한 막둥이로만 보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두 분은 형제간이십니다. 장남과 막내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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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 신부님과 오후 2시 묵주기도

 

 

오후 2시 묵주기도 후 4시 미사 마지막 즈음이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이 마이크를 잡으시더니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성산에 평화 성산에 평화 성산에 평화 성~산에 평~화
일출봉아 사랑해 일출봉아 사랑해 일출봉아 사랑해 일출봉아 사랑해
성산에 평화 성산에 평화 성산에 평화 성~산에 평~화”
호랑이같은 포효로 애끓는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는 신부님은 노래 후에 모인 이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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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9일기도 오후4시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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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에 평화 일출봉아 사랑해
 

 

11월 7일 기도 5일째
오전 11시, 전국 300개 시민사회단체, 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출범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10월 30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가 작성한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에 대한 의견서’에 제2공항 예정부지의 생태보전적 가치가 크고, 철새도래지와 인접하여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 위험성이 높은 점, 인근 주민들이 소음피해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입지적 타당성이 매우 낮은 계획”으로 다른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부가 제주 제2공항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국민혈세 5조 1278억 원을 또 다시 재벌 대기업에 갖다 바치기 위해서이고, 더욱이 전날(6일) 국회 국방위 예결소위는 남부탐색구조부대 연구 용역예산 창설방안을 통과시켜, 제2공항이 결국 공군기지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로 확인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던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가 울먹였습니다. 탈핵현장에서도 본 적 있는 그이 역시 제주사람이라더군요.
제주도민 단식 김경배 42일+38일, 윤경미 23일, 최성희 24일, 엄문희 42일, 노민규 17일에 이어 박찬식 상황실장 단식 8일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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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출범

 

 

굶고 있는 상황실장을 뒤로 하고 청와대 앞 100m 기도하던 자리로 왔을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 집회를 앞두고 경찰이 바리게이트를 치는 문제로 9일기도 팀과 마찰을 빚고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하고 오는 동안에도 문규현 신부님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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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도 거른 그대 홀로 그 자리에

 

 

이윽고 오후 2시. 9일기도하는 사람들은 경찰 앞에서 기도를,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1500명 집단해고 사태에 대해 청와대로 면담을 하러 가겠다고 경찰들과 몸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문정현, 문규현 두 신부님들은 톨게이트 노동자들 편에 계셨습니다. 그동안 아스팔트 옆자리에서 딱히 도울 일이 없다가 비로소 연대하신 겁니다. 말 못하는 제주의 생명체와 해고 노동자와 비정규직의 인권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 존재들이니까요. 맨 앞에서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하시는 동생 문규현 신부님을 뒤에서 떡 버티고 호위하시는 문정현 신부님이 누군가와 닮아 보였습니다. 제주의 돌하르방이었습니다. 돌하르방이 지켜보는 앞에서 경찰과 노동자와 종교인과 시민들의 경고음과 절규와 기도가 뒤섞인 그곳은 청와대 100m앞 민주주의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 파괴당하고 유린되고는 살게 해달라고 몸부림치는 걸까요?      
지난여름 유성기업과 함께 빗속에서 문화제를 하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예상대로 몇 달 전의 유쾌함은 사라지고 절박함만이 더해졌습니다. 다음 날, 결국은 13명이 연행되고야 말았습니다.
할멍, 그러나 저는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야기를 더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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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하는 동생 뒤에 돌하르방같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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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게이트 노동자들 몸싸움과 제주제2공항반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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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의 호령
 

 

그 날 미사 후 세실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세실의 할아버지는 현재 제주공항 아래 묻혀 계시다고 했습니다. 4.3항쟁의 희생자이셨던 게지요. 세실처럼 4.3항쟁으로 가족을 잃고 구럼비를 더 이상 후손에게 보여줄 수 없는 제주 사람들이 지금 제2공항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 뒤로 보이는 청와대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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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주공항 아래 4.3 항쟁 희생자들이 묻혀있는데 제2공항이라니

 

 

11월 8일 기도 6일째
전날의 격렬한 비감으로 떨리는 가슴인 채 다음 날 오전 10시 다시 그 자리를 찾았을 때, 은행나무 아래 100배는 더욱 고요했습니다. 절을 마친 후, 한 수사와 우도에서 토종 땅콩을 가져와 며칠째 까던 잔다크가 대통령내외께 편지를 쓰더군요. 잔다크는 반생명적 국책사업을 멈춰달라는 당부와 함께 땅콩 심고 재배하는 법을 적었습니다. 푸른 기와집의 그 분들이 보내드리는 우도땅콩 종자를 땅에 심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자체가 제겐 놀라움이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콘크리트에서 싹이 나길 기대하는 희망 아니었을까요? 그건 정권퇴진운동이란 협박보다 훨씬 강하고 무서운 이름, 사랑이었습니다.
잔다크는 그 날 오후 네 시 미사를 마치고 제주도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설문대할망, 저는 당신을 닮은 잔다크를 보내며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내가 제주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겠구나. 그래서 그들의 땅을 함께 지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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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우도 땅콩을 보내며 편지 쓰는 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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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공소회장 잔다크와 오뚝이같은 오두희

 

 

11월 9일 기도 7일째
토요일자 일간신문에 문정현·문규현 형제 신부님 사진이 실렸습니다. 제 사진 선생님의 작품이었죠. 열흘 내내 붙어살던 저는 찍지 못한 사진을 선생님은 찍으셨습니다. 그 신문을 신부님들께 보여드렸습니다. 두 분이 좀 친해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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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문에 나왔어요

 

 

이 날 어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문규현 신부님의 운동화가 개성공업공단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989년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에 방문했던 임수경과 함께 판문점을 통과해 남한에 오신 문규현 신부님께 개성공업공단 재개를 바라는 생산자가 개성으로 돌아가고 싶은 염원을 담아 선물했다는 사연이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꿈꾸며 남북화해를 시도하는 정권에서 제주에 군 시설 확충이라니,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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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업공단에서 만든 신발

 

 

11월 10일 기도 8일째
즈려 밟힐 은행나무 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수녀님들이 만든 동백꽃 붉은 잎은 100배와 더불어 하나둘 늘어갔습니다.
미사 후, 문정현 신부님의 신청곡 미션Mission 주제곡이 아코디언과 기타로 연주됐습니다. 우리의 소명은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일입니다. 참, 그 아코디온도 개성공업공단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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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제주를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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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진 자리에 제주제2공항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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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의 제주를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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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11월 11일 마지막 기도 9일째
할망, 9일기도 마지막 날엔 저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함께 100배를 했습니다. 머리를 땅에 대고 빈손을 하늘로 향하는 기도를 백 번 하면서 하늘과 땅이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미사는 오후 4시에서 7시로 청와대 앞에서 광화문광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거기서 기괴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같은 천주교 신자들의 미사 방해 행태를요. 종교를 막론한 모든 분야에 보수와 진보가 있었으며 그 둘은 상호존중보다는 증오와 경멸을 택하기가 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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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기도 마지막 미사와 맞은 편

 

 

<에필로그-공론화 결정 이후>  
9일기도 나흘 후인 11월 15일 마침내 공론화가 결정되었습니다. 드디어 제주에 제2공항을 건설하는 데 도민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한 단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9일기도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단식 16일만에 짐을 싸서 병원에 입원하러 가는 박찬식 상황실장에게 단식하는 동안 뭐가 제일 힘들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밥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회 관계망 형성을 할 수 없었던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죠. 밥 한 번 먹자는 우리네 인사가 꼭 밥을 먹자는 약속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알아갈 시간을 갖자는 말인 걸 외국인들은 이해 못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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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2공항 철회하라

 

 

그 다음 날, 저는 수유너머 104에서 하는 <인류세, 위급한 시대를 살아가기> 강좌를 들었습니다. 인류의 농경, 산림벌채를 시작으로 신대륙 발견과 산업혁명을 거치고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작금의 기후변화까지 온 지구는 지금 비상사태라고 했습니다. 급변의 시대에 발표된 여러 학설 중 색다른 게 하나 있었는데, 이름하여 ‘Sex Ecology’ 성 생태학이었습니다. 
요지는 ‘Nature is lover not your mother! 자연은 연인입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지구를 무조건 받아주는 어머니가 아니라 존중해줘야 하는 연인처럼 대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지구를 무한한 착취 자원으로 보지 말고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거죠.

그로부터 11일 후인 11월 26일,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무엇이 쟁점인가?> 국회토론회가 있었습니다. 계획의 적정성과 입지의 타당성을 중심으로 볼 때, 사전타당성 검토와 예비타당성 검토를 비교해 보면 과다예측 수치가 드러나고, ADPI 보고서대로 기존 공항을 확장하면 충분할 것을 과다한 매립안을 부각시켜 굳이 공항을 하나 더 만들어 두 개의 공항을 운영하겠다는 의도는 여간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제주 제2공항의 전개과정와 쟁점들을 다룬 정영신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항공 수요예측과 공항인프라 확충규모 문제 등 계획의 적정성 검토를 다룬 민만기 녹색교통 공동대표, 대안 설정의 적정성과 현공항 활용중심 입지타당성을 검토한 박영환 한국항공소음협회장, 공항주변 조류 유인시설 및 철새 등 조류충돌 위험성을 검토한 최진우 환경생태연구재단 상임이사, 마을과 주민의 삶을 위협하는 제주도 개발역사를 정리한 박찬식 육지사는 제주사름대표(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의 발제 모두 충실했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발제는 임영신 이매진피스 대표의 ‘제주의 환경수용성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제주관광 방안’이었습니다. 관광생애주기로 볼 때 제주도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수용력은 선택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동산 개발업자의 제주성산시티 청사진으로 드러난 탐욕의 이빨 앞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성산을 느끼는 순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건 울부짖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절규를 들었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습니다. 땅과 바다와 새와 나무가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산의 사람들이 그대로 살게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대체 누가 무엇을 위하여 이 삽질을 강행하는 겁니까?
설문대할망, 부디 제주도를 지켜주세요. 

 

 

생명과-평화의-섬-제주를-사랑하는-사람들의-9일기도_resiz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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