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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9 - 그들과 함께한 46일

posted Nov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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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9 - 그들과 함께한 46일

내용 없는 첫 교섭
11월 9일 금요일,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왔다. 이 날은 상견례 후 첫 노사 교섭일이었다. 여의도 극동빌딩 5층에서는 노사 대표자들이 교섭을 하고 있었고 고용노동청 앞에서는 노조원들이 바닥에 하얗게 빈 현수막을 펼쳐놓고 손 글씨로 구호를 쓰고 있었다.

'노조파괴 수수방관 노동부는 각성하라', '유성노동자 8년의 눈물 고용노동부도 공범이다' 등등 까맣고 빨간 글씨들이 바닥을 채웠다.
 

 

고용노동부에게-하고싶은-말은-1resize.jpg

그들이 하고 싶은 말들은

 

 

오후 6시 서울사무소 앞에서 문화제가 있었다.
이 날이 유성기업 월급날이란 걸 알았다. 10월 1일부터 부분파업, 10월 15일부터 전면파업을 했으니 월급의 1/4~1/5을 받았다는 것 역시 알았다. 연대하는 곳곳에서 성금이 이어졌다.

 

 

성금모금합성_resize.jpg

도움의 손길들

 


이정훈 영동지회장이 이날 오전10시부터 오후4시 20분까지 있었던 교섭 보고를 했다. 사측은 노조파괴 주범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했고 노측은 유시영 회장과 유현석 대표이사가 본 교섭에 나오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한 마디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DSC05990-1resize.jpg

첫 교섭 보고하는 이정훈 영동지회장

 


영동 어린이가 본 서울
2018년 11월 10일 토요일은 전국노동자대회 날이었다. 얼마 전부터 카메라에 눈을 대는 부분인 아이피스가 찢어져 너덜거리고 본체를 감싼 고무도 찢어져 교체를 해야 했다. 지난 2년간 내 눈이 가장 많이 본 피사체는 단연 유성기업 노조원들이었다. 시간이 없어 아이피스만 교체하면서 그동안 촬영했던 수많은 컷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반추해 보았다. 남대문에서 카메라를 정비한 후 서둘러 오후 3시에 맞춰 시청 앞으로 향했다. 먼저 무대 쪽을 촬영한 후 유성기업 조끼를 찾아 갔다. 영동지회 23명 중 한 노조원의 딸인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나와 있었다. 그 날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있던 아이는 힘이 드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 기댔다.

 

 

영동지회-부녀1-1resize.jpg

아빠에게 기댄 어린 딸

 


오후 5시쯤 되어 행진을 시작했다. 맨 앞에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붉은 총파업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왜 총파업을 외치며 서울 시내 거리를 활보할까 생각해 보았다. 생존권을 걸고 전면파업에 돌입한 이들이 바라는 건 원만한 노사교섭뿐이었다. 일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단지 밤에는 잠 좀 자면서 노조파괴 없는 회사에서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2018-전국노동자대회-1resize.jpg

총파업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

 


동십자각까지 도보행진을 한 후 정리 집회를 했다. 오후 6시쯤 아빠 손에 이끌려 힘겹게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나는 세 시간 동안 유성기업 노조원들을 찍을 게 아니라 그 아이 손을 잡고 서촌골목에 가서 맛있는 먹을거리를 사주고 조선시대 임금님이 사셨던 경복궁에 데려가 사진을 찍어줬어야 했다. 그래서 이제 겨우 아홉 살인데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왕복 여섯 시간은  걸려서 서울까지 왔을 아이에게 추억이 될 만한 서울나들이를 시켜주었어야 했다. 그 아이는 전 날이 아빠 월급날이었지만 엄마의 한숨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치킨 시켜달란 말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까지 아빠를 따라왔을 때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기대가 컸을까? 일만 노동자들의 등을 보고 앉았다가 어른들의 보폭을 잔걸음으로 뛰어서 따라잡다 대도시의 매연과 먼지를 그 자그만 폐에 채워 가려고 왔겠는가? 후회가 어두워지는 광화문 광장에서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꼬리를 길게 달았다. 
 

 

부녀3-1resize.jpg

영동 어린이와 함께한 전국노동자대회

 


친구가 된다는 것
일주일 후인 11월 17일 오전에 산책을 했다. 빠알간 아기단풍이 땅에 떨어져있는데 어찌나 예쁜지 저절로 손이 가 주울 수밖에 없었다. 그 이파리를 보자니 문득 한광호 열사와 전태일 열사가 떠올랐다. 생명의 근원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 마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혁명 정신으로 되살아난 그들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그날 오후에 전태일문학상 시상식을 했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죽음으로 항변한 노동자 전태일의 정신을 제대로 기려냈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아야만 했다.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을 하는 순간 유성기업 노동자 대표가 다가와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나도 모르게 그를 한 팔로 얼싸안았다. 그런데 자리로 돌아간 그가 울기 시작했다. 그의 울음을 보면서 울컥해진 나는 엉겁결에 준비하지 않았던 말을 했다.
“저는 동지니 투쟁이니 그런 어려운 말 모릅니다. 하지만 이젠 친구가 된 것 같아요.”
사실 그들의 지난한 8년 세월에 이제 고작 2년도 함께하지 않은 내가 무슨 자격으로 친구 운운할 수 있겠나. 그러나 물리적 시간이 관계를 좌우하는 건 아닐지라도 나는 카메라가 닳도록 그들을 찍으며 함께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일처럼 기뻐하고 슬퍼했다.


폭력이 낳은 폭력과 언론의 태도 
한동안 조용한 날이 계속됐다. 서울 집회 한 건도 없는 한 주가 지나갔다. 전면파업을 시작한 지 44일이 지나도 교섭은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27일 밤 11시가 넘어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았다. 폭행 사건이었다. 기사에 언급된 피해자의 성(姓)을 보는 순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지난 10월 4일 해고자 11명 대법원 선고일에 법정에 나타났던 이였다. 노조파괴에 누구보다 앞장선 사람이라 원성이 자자했지만 도통 증거를 남기지 않아 어찌할 수 없다던 이였다. 모두들 입을 모아 그가 2014년 10월에 유성기업 노조파괴 용병으로 채용되고부터 가학적인 노무관리와 노조파괴행위가 극심해졌다고 했다. 노조원들의 40% 이상이 정신질환 고위험군인 걸 감안하면 교섭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전면파업이 40일 가까이 되어가는 중에 사측이 만든 제3노조(어용노조)와 임금협상을 하러 온 그를 보았을 때 느낀 노조원들의 격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도만으로 보았을 때 현장의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폭력은 정당방위를 제외하고는 정당화될 수 없다. 나는 폭력을 혐오한다. 누군가 내게 좌파냐 우파냐를 물었을 때 평화주의자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건은 22일 목요일에 일어났는데 그게 그렇게 엄청난 폭력 사건이었다면 당일이나 다음 날 이슈화되었어야지 그 때는 고작 단신 몇 개로 처리됐던 기사가 왜 5일이나 지난 그 다음 주 27일 화요일에 정치권까지 나서서 대서특필되었을까? 순식간에 전환된 국면이 유성기업 노조는 물론 민주노총에도 매우 불리해 보였다.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린다. 잠을 설치고 천안으로 갔다.
천안지청 앞 오후 3시 <노조파괴 범죄자 유시영 엄중처벌 촉구 금속노조 결의대회>에 도착해 걱정 어린 눈으로 조합원들을 살폈다. 김상은 변호사와 노조원을 통해 알아본 사실은 기사와 많이 달랐다. 그날은 제3노조 임금협상일이었다고 했다. 당시 노조원들은 대부분 퇴근한 오후였고 남아있는 몇 명의 눈에 그동안 종적을 감췄던 김 상무가 눈에 띄자 왜 우리와는 만나주지 않느냐고 우르르 몰려간 것이었다. 유성지회 노조와는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그가 사무실 문을 잠그자 노조원들은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기사에 난 폭력 상황이 1시간이 아니라 1~2분이라고 했다. 경찰에서도 폭행은 2~3분이라 했다고 한다. 편차가 심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노조원들의 쌓인 분노를 감안해 볼 때, 만약 기사대로 한 시간 동안 집단 폭행을 당했다면 그는 경찰 확인 전치 4주, 부위별 도합 12주가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계획된 테러가 아니라 돌발 상황이었다고 했다. 서울사무소에 있던 아산지회장은 전화로 그 사태를 알았다고 했다. 사측이 감금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시간 중에 아산지회장과 통화한 사측 최 대표는 잘 알 것이다. 만약 사무실 안에서 계속 폭행이 이루어졌다면 바로 문밖에 있던 경찰이 왜 들어가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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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용역 대포차가 노조원을 치러 올라탄 보도블록

 


그래도 폭력은 어찌되었든 폭력이다. 2011년 5월의 그 밤, 사측이 고용한 용역이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대포차로 노조원 13명을 치고 달아났고, 6월에 용역들의 집단 폭행으로 22명이 중상을 입고 그 중 용역이 던진 소화기에 맞아 노조원의 두개골이 깨진 것도 폭력이고, 노조원이 사측 간부의 안면을 골절시킨 것도 폭력이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착수했다. 전면보도가 된 다음 날인 28일, 아산경찰서에서는 폭행 혐의가 있거나 문을 막아섰던 노조원들 11명에게 소환 요구를 했다. 곧 구체적인 정황과 시비가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모면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사실여부와 인과관계를 잘 알아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참아온 사람들이 왜 이 민감한 시기에 폭발할 수밖에 없었을까? 
8년 전 직장폐쇄, 용역깡패 투입, 해고, 어용노조 설립, 징계와 고소·고발, 벌금, 감시, 괴롭힘, 그리고 동료의 죽음 등으로 노조원들의 정신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었고 지금은 막바지 전면파업 중이었다. 조합원들은 정상적인 교섭으로 이 지긋지긋한 8년 싸움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노조와는 교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측이 일시 파업 중이던 제3노조와 임금협상을 체결하려는 순간에 우발적으로 사건이 터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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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집회를 마친 사람들이 오체투지와 함께 천안시 도보행진을 했다. 분위기도 발걸음도 무거워 땅이 꺼질 것만 같았다. 함께 걸으며 사진을 찍다가 그들이 엎드릴 때 나도 함께 엎드렸다 일어나는데 무릎이 아스팔트에 짓이겨지는 것처럼 아팠다. 미처 무릎보호대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우리 육신은 얼마나 연약한가? 목장갑을 끼고 무릎보호대를 했어도 오체투지가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걸핏하면 하는 오체투지가 아니다.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그들은 누군가에게 읍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다시 냉정해졌고 시민들은 아무도 그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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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저녁 7시쯤 서울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집으로 가야할 발길이 서울사무소로 향했다. 건물 앞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5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노조와 상관없이 이미 사측에서 임대 계약을 마친 5층은 사무실 집기도 없이 썰렁했다. 45일 전인 10월 15일, 유성기업 아산·영동 노조원들이 처음 이 사무실에 오던 날 밤과 같은 풍경 속에 내가 있었다. 그게 마지막 밤이 될 줄은 몰랐다.


 46일만의 빈자리      
2018년 11월을 하루 남겨둔 29일 목요일 오후 1시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보도진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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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으로 끝내자는 요구가 그리 큰 욕심입니까?

 


아산에서 고속버스 두 대로 노조원들이 올라와 피켓을 들고 있었다. 건물 출입구는 이미 철문으로 막혀있었다. 최윤정 금속노조 조직국장이 사회를 보았다. 언제나 냉철한 판단과 따뜻한 배려로 조합원들을 품어주고 독려하는 그이는 말문을 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울먹이기 시작했다.
노조가 45일간 교섭을 진행하려 했지만 회사 측은 평일에는 바쁘다고, 주말에는 경조사 등 개인사정이 있다며 상견례와 단 한 차례의 교섭에만 응했다고 했다. 이 상태로 이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회사는 입체 탄압으로 40여 대의 CCTV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고 관리자들을 통해 모든 언행이 사측에 보고되고 휴식 시간 외 자리를 비우는 걸 몇 분 단위로 기록해서 임금삭감을 하는데 그런 직장 내 괴롭힘이 있는 일터에서 어떻게 일을 하냐고 항변해 주었다. 그리고 이 사태를 정략적 의도로 악용하는 세력들에 대한 우려를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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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머금은 최윤정 금속노조 조직국장

 


이정훈 영동지회장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잘 써달라고 사정하지 않겠습니다, 중립적으로만 써주십시오. 유성 8년 노조파괴에 검찰과 경찰, 노동부 등 정부부처 다 개입했습니다. 국가가 주도한 폭력입니다. 압수수색으로 다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실은 취재하지 않고 노동자가 폭력을 행사한 것만 보도합니까? 언론은 그 때 무얼 했습니까?”
그의 눈시울이 서러움으로 붉어졌다. 

 

 

중립적으로-써달라는-이정훈-영동지회장-1resize.jpg

중립적으로 써달라는 이정훈 영동지회장

 


도성대 아산지회장이 사과와 책임을 표명하며 입장문을 읽기 전에 말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됩니다. 상전이 하인을 때리면 기사가 안 되지만 하인이 상전을 때리니 기사가 되네요.”     
하지만 입장문의 첫 문장은 우발적 폭력사태에 대한 깊은 유감과 당사자의 빠른 쾌유를 빎으로 시작했다. 이후 내용은 왜곡된 언론보도에 대한 참담함과 당시 정황 설명, 그런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 원인인 장기파업과 원활하지 않은 교섭상황, 그리고 8년간 노조원들이 당한 폭력과 해고와 징계와 현재 작업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학적인 노무관리, 조합원들의 정신건강 악화와 동료의 죽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회는 노사간 교섭을 원하고 있음을 밝혔다.
참고 있던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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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조건을 알려준 도성대 아산지회장

 


방송사와 기자들의 마이크와 휴대폰이 스피커 근처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들의 입이 되어 전국의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녹음하지도 않고 메모광인데도 불구하고 별로 적지도 않는다. 현장에 있을 때 나는 사진기 외에는 기계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귀와 눈과 무엇보다 가슴을 열고 있다. 나는 온몸으로 그들의 절규를 보고 들었다. 지금 그것을 옮기는 데 너무도 부족한 내 필력을 탓할 뿐이다.

 

 

당신들은-어떤-입이-되고-있나요-1resize.jpg

당신들은 어떤 입이 되고 있나요?

 


한 시간여 기자회견 내내 벌을 서듯 피켓을 들고 있던 노조원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천막을 철거하고 현수막과 염원띠를 풀고 주변을 청소했다. 버스 앞에서 그들의 빈손에 잠시 내 작은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다. 버스는 떠났다. 그들이 충청도에서 서울특별시에 온지 46일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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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자해지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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