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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남도 순례길 1 - 홀로 걷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posted Jul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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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믿음과 사랑을 잃고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이어진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은 적이 있다. 

나머지 소망도 잃고 해남 땅끝마을로 갔다. 

 

혼자 2주간 240km를 걸었다.

지난 3년간 그랬던 것처럼 도보순례라 한다. 

 

고리·월성·울진핵발전소가 있는 동해안 7번 국도를 걸었으니 다음은 목포에서부터 영광한빛핵발전소가 있는 서해안 길을 탈핵도보순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 4·16 세월호 참사 7주기 추모 진도 도보순례길이 18번 국도였다. 

18번 국도는 진도 군내면을 시작으로 해남~강진~장흥~보성~순천~곡성~구례 화엄사까지 총 231km의 길이다.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인 화엄사가 나를 끌어당겼다.

18번 국도를 선택했다. 

거기에 얼마 전 완독한 <토지>와 박경리 선생님을 기리기 위한 하동 섬진강 길을 더했다. 

그래서 순천에서부터는 광양~하동~섬진강길~구례 화엄사로 도보순례길을 정했다. 

 

이 글은 지금까지 쓴 탈핵도보순례기라고 한정짓기에는 자기만의 방을 찾아 길을 나선 이야기에 가깝다. 

그래서 새로 정한 이 글의 큰 제목은 ‘길에 뜬 별 혹은 길을 뜬 별’인 길뜬별. 

걸으면서 보고 느낀 이야기는 둘째날 사찰 순례만으로도 단편소설 분량이라 2부에 걸쳐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은밀하고 애절한 이야기는 눈 밝은 출판사가 발견할 때까지 꼭꼭 묻어두기로 한다.

 

길뜬별 / 남도 순례길 1 - 홀로 걷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 제 1일. 2021. 6. 14. 월. 5.4km

배낭 몇 개 빼고는 자동차 트렁크에 겨우 들어갔다. 반년간의 짐이었으니 양호했다. 

정읍에서 떠나 길을 나섰다. 

홀로 하는 도보순례라 선택과 결정을 직감에 맡기기로 했다. 발길 닿는대로 가다보면 때에 맞는 장소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디를 가든 맞아주는 곳에 머물고 거절하는 곳에서는 발의 먼지를 털고 나오기로 했다.

 

가는 길에 두 번이나 목적지를 바꿔 최종적으로 전라남도 해남 땅끝 전망대로 향했다. 끝에서부터 시작하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을 아는 듯 ‘희망의 시작 땅끝마을’이란 문구가 보였다. 상식적으로 땅끝마을에 갈 때는 해가 수평선에 내려오기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6시가 훌쩍 넘어 7시 가까이였다. 

 

‘세상의 끝’이라는 스페인의 땅끝마을 피니스테레에서 일몰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저녁 8~9시가 돼도 해가 바다로 내려올 줄 몰라 맥주 산미구엘 한 캔을 마시다 마시다 일몰 풍경을 포기하고 왔었다. 한국의 해남 땅끝마을에서는 수월하게 해의 사라짐을 볼 수 있었다. 

 

일몰을 기다리다 근처 숙소를 검색해보니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전화해 보니 투숙 가능, 1인 1박에 25,000원이라고 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일몰을 보고 난 후 숙소로 갔다. 2층침대 둘이 있는 4인실 도미토리(공동침실, 25,000원)와 바다가 보이는 전망의 트윈베드 2인실(35,000원)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만 원 더 주고 2인실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 주까지 요양보호사였다. 돈 만 원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이다. 게다가 다음 날은 비 예보가 있으니 어차피 일출을 보긴 어렵다. 주인이 갈등하던 내게 어떻게 결정하겠냐고 물었다. 

“싼 거로 할게요.”

다행히 더 이상의 손님이 없어 4인실을 혼자 썼다. 

숙소 옆 편의점에서 햇반을 사다가 정읍에서 키워 씻어온 마지막 상추와 삶은 달걀과 멸치볶음과 신김치로 저녁밥을 먹었다. 우울해 질까봐 작은 캔맥주 호가든을 마셨다. 첫날, 꽤 좋은 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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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에서 내려놓음

 

 

☆ 제 2일. 6. 15. 화. 15.4 km

새벽 4시 전에 눈이 떠졌다.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5시 넘어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나 감자스프를 편의점 전자렌지에 데워와 차 안에서 삶은 달걀과 먹었다.  

일찍 일어나 나온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남은 삶은 달걀 한 개와 반투명 테이프를 선물로 주며 나주의 ‘3M’이란 회사에서 11년 된 해고노동자가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인이 받아든 반투명 테이프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2~3km를 북진하다 다시 차를 돌렸다. 땅 끝에 왔는데 전망대에만 올랐지 땅끝을 밟지 않았다는 데 기억이 미쳤다. 이렇게 시작된 되돌아옴은 이날 내내 계속됐다. 

선착장 끝까지 갔다가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 왔다. 

자 - 이제 땅끝에서부터 올라간다.   

 

사찰도 단아하지만 스님이 아름다운 미황사

구름 뚫고 올라가 천애절벽에서 목놓아 운 도솔암

초의선사의 소박한 삶 대흥사 일지암과 나를 위로해 준 개 금륜

고정희 시인 생가에서 만난 시인의 올케  

사랑은 자유임을 일깨워준 김남주 시인 생가 

빗속의 다산초당과 배롱나무 탐스런 혜장선사의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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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맑은 스님

 

 

☆ 제 3일. 6월 16일 수. 강진~장흥 22.5km

강진버스여객터미널 근처에 주차를 하고 터미널부터 장흥 방향으로 걸었다. 

등산복에 등산화, 모자와 마스크와 배낭, 목장갑에 대나무 지팡이가 전부였다. 

7.3km까지 쉼 없이, 혼자 걸으니 대화로 인한 에너지 소비가 없어 수월했다. 

그런데 걷다가 지난 4월에 팽목항에서 지팡이에 묶어온 노란 리본이 어느결에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나도 모르는 새 비움이 시작됐다.   

15.4km를 10분 휴식 포함 3시간 50분에 주파. 

외롭지 않았다. 고독했지만 상쾌했다. 

17km 구간 내 카페도 화장실도 없던 산티아고 순례길 어느 구간에 비해 모국어가 도처에 있는 한국 남도길은 매우 쾌적했다. 그러고보니 360도 빙 둘러 펼쳐진 산맥 어디에도 송전탑이 없었다. 남도길이 편안한 이유였다.  

장흥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때마침 10분 후 강진행 버스가 있어서 출발지로 갔다. 4시간 걸은 거리를 15분만에 다시 돌아갔다. 시간과 돈의 효율성을 따지기에는 마음의 안정이 아주 컸다.  

 

운전을 해서 다시 장흥으로 갔다.  

민박집을 찾아 대나무 숲 400m를 돌고 배롱나무 군락지를 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전통손두부집에서 순두부 백반을 먹고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에서 7km를 더 걸었다.

숲과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보시라고 권한다. 대단한 정경을 누릴 수 있다. 햇빛을 받아 피톤치드를 뿜어주는 숲이 주는 엄청난 건강과 치유를 받는다면 입장료 3천 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 인간이 가꿨는데도 친환경으로 관리해서 그런지 자연과 어우러진 조경시설이 무척 편안했다. 

그런데 나오는 길에 왼쪽 발목 안쪽이 아팠다. 갑자기 너무 많이 걸은 탓이었다. 

그렇지만 고민 끝에 또다시 강진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둘째날 비가 와서, 또 사찰순례로 걸을 만큼 걸어서 차로 온 해남~강진 코스를 걸어서 메꾸기 위함이었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는 게 두고두고 아쉬워하지 않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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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마주하다

 

 

☆ 제 4일. 6월 17일 목. 해남~강진 19.4km

강진에서 오전 8:10 버스로 20분 걸려 해남에 갔다.

전날의 무리로 왼쪽 발목 안쪽이 아파 발목에 닿는 등산화 대신 목짧은 여름 등산화를 신었다. 

18번 국도 따라 5시간 걸려 강진버스여객터미널까지 걸었다. 

터미널 근처에서 국산콩국수를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아침에 전날 남긴 애호박 된장찌개에 햇반 반 개를 말아먹고 19.4km를 걸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차를 몰고 봇재를 거쳐 보성버스터미널에 갔다. 다음 날 장흥행 첫 차 시각을 알아보고는 숙소를 정하려고 빙빙 돌았다. 모텔은 싫으니 민박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엄청 허름한 여인숙이 보였다. 옛날 2층집을 개조한 곳이었는데 현금가 25,000원이었다. 어쩐지 으스스한 분위기였지만 들어갔다. 그런데 한 평 남짓한 방이 복도 양쪽으로 꽉 찬 이층 끝방에 상주하는 남자가 누워있었다. 하루종일 차도를 걸었으니 씻어야 했는데 공용세면장에서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씻고 나와, 방안 TV 위 뿌연 먼지를 닦아내고 빈 병에 담아온 전날 된장국물에 햇반과 조미김으로 저녁밥을 때웠다. 창 밖에는 새소리가 들렸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감옥의 독방이 이러할까? 누가 방문을 열까봐 조마조마하며 새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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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살아있다

 

 

☆ 제 5일. 6월 18일 금. 장흥~보성 15.8km

일어나자마자 보성버스터미널로 가서 07:05 첫차로 다시 장흥시외버스터미널에 갔다. 장흥~보성 구간은 순례 전에 노선을 짤 때부터 최 난코스였다. 18번 국도 따라 율포해수욕장으로 돌아가자니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고, 2번 국도로 가자니 터널을 세 번이나 지나야 했다. 

 

일단 터미널 뒤 편의점에서 따뜻한 두유와 삼각김밥을 사먹었다. 하루종일 언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 구간이었으니 먹어두어야 했다. 편의점 주인남자에게 보성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짝 없어요? 여자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란 말이 돌아왔다. 남자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은가? 여자 혼자 다니면 위험한 나라라면 우리나라는 아직 좋은 나라가 아니다.

 

나는 보성행 구 도로를 걸었다. 인터넷 지도에 나오는 산을 관통하는 길을 택했다. 6km쯤 가니 신기마을이 나왔다. 거기서 제암산을 넘어야 했다.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장흥공설공원묘지 앞에 공공근로하러 나오신 할머니들이 계셔서 보성으로 넘어가는 길을 물었다. 

“산에 혼자 간다고? 호랑이 나와. 친구 없어?” 

짝도 없고 친구도 없는 나는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띄엄띄엄 사람이 다니는 산아래 공단보다 아무도 없는 산이 안심되었다. 한 시간쯤 산길을 올랐는데 이정표에 예상 지점이 없다. 인터넷지도를 가동시켜 보려고 모처럼 현재위치를 켰지만 산속에 있는 나를 인공위성도 잡지 못했다. 숲 속으로 들어가기엔 비에 자라난 풀들이 길을 덮고 있었다. 옆쪽으로 사자산 자전거도로 시작 지점이 있길래 그 길로 들어섰다. 방향이 다르긴 했지만 그 길로 가면 제암산휴양림이 나올 줄 알았다. 단풍나무와 향나무와 밤나무가 가득한 숲이었다. 도반도 없는데 겁도 없이 점점 산속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을 더 헤맸는데 자전거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나와보니 산을 오른쪽으로 빙 둘러서 옆 마을로 나온 거였다. 기가 막혔다. 이미 10km이상 걸었다. 재도전할 기운도 없었고 다시 간다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마을로 내려가 어느 중년남자한테 보성 가는 길을 물었다. 장흥터미널로 되돌아가란다. 비에 쫄딱 맞은 내 꼴을 보더니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겠단다. 엉뚱한 데서 오전 에너지를 다 쓰곤 모르는 남자 트럭에 올라탔다. 

“모르는 사람 차타고, 저 겁도 없죠?”

“그렇게 혼자 걸어가는 게 더 겁나네요.”

제주도에서 귀농하러 장흥까지 온 남자는 표준어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낯설지 않았나 보다. 

여하튼 장흥시외버스터미널은 이틀 전부터 네 번은 왔다. 

해남~강진 구간을 잇느라 장흥에선 숙박도 하지 않았다. 인연이 아닌가 보다. 장흥~보성 구간은 포기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보성으로 갔다. 

 

보성버스터미널에 세워둔 내 차를 타고 우리나라 민간정원 3호라는 ‘초암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일기를 열 편이나 썼으니 유명한 정원은 좀 봐줘야하지 않겠나.

260년 고옥(古屋) 초암정원에 걸맞게 가디건을 걸치고 구두를 신고 갔다. 하지만 입구에서 차로 돌아가 등산화로 갈아신고 등산점퍼를 입고 물병을 챙겼다. 조경된 집 입구를 거쳐 3인 이하 입장료 만 원권을 입구 통에 넣으니 인사말이 나왔다. 

잔디밭과 과수원과 편백나무 산책길과 대나무숲과 초암정과 산 정상 기도처까지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 옛날 광산김씨 문숙공파 8대 종손의 효심과 가족애로 60년 이상 만들어온 정원은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의 장대함과는 또 다른 단아함과 정갈함이 있었다. 장흥에서 본 야생 대나무숲과는 차원이 다르게 깔끔한 손길이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눈에 띄는 표어만 아니었어도 좀 더 우아했겠지만 나름의 친절과 공대를 느낄 수 있었다. 집 뒤에 그런 동산을 지닐 수 있다면, 동산에서 바다가 펼쳐진 득량만을 매일 바라볼 수 있다면 어린왕자에 나오는 소행성처럼 평생 집 밖을 벗어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 시간 동안 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점심식사도 거른 채 다음 행선지인 예당역 근처로 갔다. 숙소를 찾아보니 마을에 단 한 군데. 그런데 1인이라고 만 원을 깎아주었는데도 내 수준에선 좀 비쌌다. 1일 5만 원 기준으로 순례를 하는데 숙박비로 다 쓰려니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설상가상 과일이 먹고 싶었다. 집 떠나면 가장 못 먹는 음식이 과일이다. 평소에도 반찬보다 과일을 더 챙기는데 닷새째 되니 몸이 필요한 걸 원하고 있었다. 마트에서 방울토마토를 한 팩 사서 화장실에서 씻었다. 차에서 잘 셈으로 화장실에서 세수도 한 뒤였다. 차 안에서 토마토를 걸신들린 것처럼 먹다가 문득 내가 지금 왜 이런 궁상을 떠나 싶었다. 적어도 씻고 잠은 제대로 자야 다음 날 순례를 할 것 아닌가. 나는 동네 유일한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새 건물이라 방도 넓고 취사도 가능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포장된 사골국에 햇반을 끓여 먹었다. 땀이 나니 살 것 같았다. 전날 냉수욕을 하고 이틀간 춥게 잤으니 오죽했겠나. 전날 여인숙이 얼마나 더러웠는지 몸 여기저기가 물려 있었다. 

더 이상 직감에 따라 즉흥적으로 순례한다고 오기부리지 말고 다음 날 숙소를 예약하기로 했다. 사서 고생도 팔자지만 적당히 하자. 고행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마침 벌교에 1일 1인 2만 원인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전화로 예약하고 입금을 했다. 작년까지 쓰던 2G폰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곤 곧 불안해졌다. 6인실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어쩌지? 환불할까 하고 다시 전화를 하니 방역 때문에 6인실을 혼자 쓰게 해 주겠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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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산 가는 길

 

 

☆ 제 6일. 6월 19일 토. 보성~예당 18.5+벌교 산책=21.2km

06:46 예당역 출발~07:02 보성역 도착

무궁화호에서 내려 걷는데 골반 통증이 시작됐다. 길은 18번에서 2번 국도로 바뀌었다. 

한 시간 반쯤 걸은 9시 반. 그 옛날 나그네가 걷다 딱 쉬기 좋은 재에 ‘쇠실쉼터’가 있었다. 아메리카노가 1500원. 그 정도는 나를 위해 선물하고 싶었다. 스텐컵을 드려 원두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매장을 둘러보니 상품들 품질이 좋고 깔끔했다. 내가 칭찬을 하자 주인여자가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해남부터 걸어오는데 송전탑이 없어서 정말 평화롭다고 하자, 주인이 그 마을도 풍력발전소 때문에 송전탑을 반대한 적이 있다고 했다. 탈핵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주인은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건 이후 수산물을 쳐다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핵 방사능의 위험을 알고 있었다. 바다가 돌고 돌아 결국은 그 물이 다 합쳐짐도 알았다. 주인은 길 떠나는 내게 “훌륭한 일 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나와 걷는 나는 똑같은데 말을 하고 안 하고가 그렇게 차이가 있을까? 

나는 내 정체성을 고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세상에 겨자씨만큼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 그런데 그냥 걸으면 단지 고생일 뿐이고 몸자보를 붙이고 걸으면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하니, 어쩐지 겸연쩍다. 여하튼 그 짧은 대화는 이후 내 걸음을 다르게 만든 작용을 했다.

 

보성역에서 예당역까지 녹색로 12.9km를 단숨에 걸었다. 가로수가 배롱나무였기에 힘이 났다.  그런데 다 걷고 나니 조금 미진했다. 편의점에서 우유와 김밥을 사먹고는 곧장 조성역까지 5.6km를 더 걸었다. 배낭을 차에 두고 천가방에 텀블러와 수첩 등만 넣고 대나무 지팡이를 드니 단출했다. 땀에 젖은 등이 직사광선에 말랐다. 조성역에서 버스를 타고 예당역으로 와서 차를 몰고 벌교로 향했다. 착착 순탄한 진행이었다.    

 

벌교 평화게스트하우스는 내가 가본 게스트하우스 중 단연 최고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알베르게 수준의 가격에 유럽 게스트하우스를 방불케 하는 인테리어와 국내 최고의 환대, 빨래를 널 수 있는 옥상, 방역으로 6인실을 독방으로 쓰게 해주는 위생개념. 더 바랄 게 없었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널고는 벌교 산책을 했다. 금융조합, 김범우의 집, 홍교, 소화의 집, 그리고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작가정신을 엿보고 왔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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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그림

 

 

☆ 제 7일. 6월 20일 일. 조성~벌교 13.2km+벌교 거리=18km

처음으로 숙소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하기 위해 두 시간을 기다렸다. 갓 구운 식빵 두 장과 수제 딸기잼과 오렌지주스와 원두커피는 마치 오스트리아 게스트하우스 같았다. 출발 두 시간 지연이 아깝지 않았다. 고마움에 나주 3M의 11년 된 해고노동자의 셀로판테이프와 탈핵전단지를 놓고 나왔다. 

 

09:42 벌교역~09:53 조성역 

조성으로 가 벌교까지 걸었다. 거리는 짧았지만 늦게 출발해서 너무 뜨거웠다. 

 

보성소방서에 ‘순직소방관의 명복을 빕니다.’ 근조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6월 17일 쿠팡물류센터 화재 진압 시 숨진 소방대원을 추모하는 것이었다. 잠시 추모와 애도의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었던 ‘보성여관’에서 묵기 위해 벌교에서 이틀이나 머물렀다. 일찌감치 입실해 샤워를 하고 한숨 잔 뒤 벌교역에서 터미널까지 내일치를 조금이라도 걸어두기로 했다. 태백산맥문학관 옆 현부자네와 소화의 집에 다녀왔다. 

보성여관은 실내에서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어 밖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시장에서 자두를 5천 원어치 샀다. 그리고 금융조합 앞길에서 전날부터 눈에 띄던 노란식당 ‘루이샌드’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혼자 먹기엔 너무 많다고 자두를 나눠드렸다. 순례길에 격식 갖춘 식사로는 최초였다. 요리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청년이 만든 ‘매콤크림파스타’는 서울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요리보다 맛있었다. 내가 극찬을 하자 요리사의 엄마인 주인이 아이스커피를 서비스로 주셨다. 그리곤 내 직업과 외모로 가늠할 수 없는 나이를 궁금해 하셨다.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다가 결국은 ‘탈핵과 소박한 삶’ 이야기가 나왔다. 주인은 내가 개인용 텀블러와 수저를 쓸 때부터 어쩐지 달랐다고 했다. 전단지를 드리고 나오면서 사람의 행태는 어쩔 수 없다고 느꼈다. 그렇게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다니려고 해도 결국은 드러나는 게 그 사람의 습성이겠지.

  

나에게는 험한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몇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는 나만의 수저. 개인수저는 가장 내밀한 도구로 어떤 식사를 해도 나만의 귀한 식탁으로 바꾸어 줄 수 있다. 게다가 내 수저는 공예작가가 은으로 만들어준 생일선물이니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을 위한 특별함이다.

둘째는 내 면시트. 그것은 숙박업소의 요나 시트나 베개를 빨지 않게 하여 물을 아끼려는 의도와 더불어 아무렇게나 잠들지 않아 품위를 지키려는 나에 대한 존중이다. 

셋째는 바디오일. 하루종일 햇볕과 바람과 비와 먼지를 맞고 걸어도 저녁에 샤워를 하고 난 후에는 피부에 유분을 더해 건조하지 않게 해 준다. 항상 걷기 전에 발에 바세린을 발라서 물집을 방지함과 같은 이치이다. 더불어 고된 일정을 소화해 낸 몸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매일 갖는 것이다.

 

그런데 호텔수준으로 깔끔히 다려진 보성여관의 순백 순면 이부자리에서만큼은 내 시트를 덧깔지 않았다. 그 역시 최고급 잠자리에 대한 예의였다. 

 

 

DSC03405-나를-소중히-하는-방법-1_resize.jpg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

 

 

☆ 제 8일. 6월 21일 월 하지. 벌교~순천 22.7km+순천만습지=25.9km

아침 7시 반, 보성여관에서 정성껏 차려준 조식을 들었다. 

토스트2, 삶은 달걀2, 딸기잼2, 갓 내린 원두커피. 절반만 먹고 나머지를 빵 담겼던 비닐에 쌌다. 점심식사 대용이었다. 

식사 중에 당직과 식사준비를 해 주신 분과 담소를 했다. 어젯밤 평상복 차림과 다른 내 행색을 보고는 관심을 가지셨다. 나는 전단지를 드렸다. 그분은 핵폐기물의 심각성을 알고 계셨다. 재생에너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고. 그런 분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분은 내게 텀블러가 있냐고 확인하시더니 메밀차와 현미녹차 티백을 잔뜩 싸서 주셨다. 좋은 일 하시니 가다 목마르면 물에 타마시라는 거였다. 수더분한 그분의 힘내라는 응원을 받고 길을 나섰다.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 전날 알아보았던 송경동 시인이 어린시절에 살던 칠성제유소(현재 칠성 떡방앗간)에 들러 백설기 한 덩이를 천 원에 샀다. 점심에 저녁거리까지 확보한 셈이었다.  

 

벌교공용버스터미널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드디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날이었다. 

8시 반에 출발했지만 최장거리에 ‘하지’라 해는 길었다. 쉬는 틈틈이 자두와 백설기로 허기를 달랬다. 오후 3:25, 순천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 3:30, 벌교행 버스 탑승, 깜빡 잠들고 깨니 오후 4시 벌교터미널이었다. 

 

내 차에 올라 숙소로 향했다. 제암산을 넘는 길에 비를 맞으며 전화했을 때, 영업중지상태라고 거절당한 곳이었다. 그렇지만 꼭 가고 싶었던 곳이라 일단 찾아가 정중히 부탁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 순례자를 맞아주는 곳이라면 복을 받을 것이고 그래도 거절하면 발의 먼지를 털고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주인은 여전히 거절했으나 내가 해남부터 진짜 어렵게 걸어왔다고 하니 마음을 바꿔 한 시간만 주면 청소를 해주겠다고 승낙하셨다. 원칙보다 진심이 통함에 감사했다.  

 

조식 후 먹은 거라곤 떡과 자두와 생수. 하지만 숙박비가 많이 드는 날엔 식비를 줄여야 했다. 

아침에 싸온 토스트와 삶은 달걀과 딸기잼에 작은 빵과 감자크림스프와 믹스커피로 저녁식사를 했다. 재워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내 시트와 수건과 비누를 썼다. 그리고 고마움의 표시로 탈핵전단지와 작은 선물을 쪽지와 함께 놓고 왔다. 가진 건 나주 3M 공장의 11년 된 마지막 해고노동자의 선물인 셀로판테이프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길을 떠났는데 긴 문자가 하나 왔다.

 

‘먼저 감사드립니다. 

좋은 일에 앞장 서 일하시는 순례자님을 존경합니다. 

이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노력하시는 마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안전운전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선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가슴에 희망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DSC03800-홀로-걷는-남도-순례길_resize.jpg

홀로 걷는 남도 순례길

 

  <길뜬별 2부는 다음에~>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2.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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